"고유한 금융파생상품이라고 할수도 없다. 그저 생색만 내는 것이다"

"파생상품이란 워낙 다양하다. 누가 먼저 만드냐가 중요하다"

지난달 31일 산업은행과 외환은행은 한바탕 입씨름을 벌였다.

대상은 외환은행이 이날 내놓은 "제로코스트옵션"이란 금융파생상품.

1일부터 개정된 외환관리규정이 적용됨에 따라 외환은행은 발빠르게
신상품을 선보였다.

산업은행은 그러나 "신상품이라고 부를수 없을 정도로 원론적인 상품"
이라고 일축했다.

산업은행과 외한은행-.

나름대로 국제금융분야에 관한한 1인자라고 자부하는 은행들이다.

산업은행의 장기목표는 세계 50위권의 국제투자은행으로 거듭나는 것.

물론 국내1위자리는 굳건히 지키겠다는 의지가 포함돼 있다.

외환은행은 외국환전문은행이었던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러자면 자연 국제금융부문에 드라이브를 걸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 두 은행이 이제 금융파생상품이란 "신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31일 벌어진 입씨름은 이 전투의 국지전일 뿐이다.

물론 금융파생상품에 관한한 산업은행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산업은행은 올들어 지난6월까지 86억달러의 파생상품을 거래, 국내전체실적
(외은국내지점포함) 2백55억5천만달러의 33.7%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외환은행은 13억9천5백만달러로 5.5%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외환은행이 자신있게 산업은행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은
파생상품시장이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두 은행의 파생상품경쟁이 가시화된 것은 전담조직신설에서부터.

산업은행은 오는 15일 런던현지법인에 본점파견직원 2명과 현지전문가 5명
으로 구성된 "자본시장팀(Capital Market Group)"을 공식 출범시킨다.

현지전문가 5명은 연봉50만달러 안팎의 거금을 들여 뽑은 내로라하는
파생상품전문가.

이들을 중심으로 파생상품거래를 확대하겠다는게 산업은행의 구상이다.

"국내"라는 우물에서 벗어나 세계 유수의 은행과 경쟁하겠다는 생각인
셈이다.

산업은행은 내년엔 싱가포르 도쿄 뉴욕등에 이같은 "자본시장팀"을 신설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갖추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리고 5년안에 파생상품만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만들어 일본흥업은행이나
미국씨티은행등과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의 계획도 만만치 않다.

최근 "금융파생상품업무 발전 3개년계획"을 확정했다.

오는 96년까지 뉴욕 런던 도쿄를 연결하는 "글로벌딜링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 계획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지난 9월 도쿄지점의 딜링룸에 30명의 인원을 충원, 본점수준
까지 끌어올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홍콩현지법인에서는 30만~50만달러의 현지전문가 3명을 채용키로 하고
교섭중에 있다.

아울러 현재 7명인 본점전문가를 15명수준까지 늘려 원화파생상품판매에
대비하겠다는 의지도 보이고 있다.

상품개발을 둘러싼 다툼도 만만치 않다.

산업은행은 외화파생상품외에 지난9월 원화파생상품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변동금리대출을 고정금리로 바꿀수 있는 이 상품은 두달만에 1천2백억원
어치가 팔리는등 정착의 단초를 보이고 있다.

산업은행은 이밖에 런던현지법인의 전담팀을 중심으로 고객의 욕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 자체적으로 만들어 놓은 상품모델이 20여개나 돼 수요만 있으면
상품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게 산업은행의 설명이다.

외환은행은 조달금리의 융통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원화파생상품의
즉각적인 판매는 힘들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제가 없어질 때에 대비해 모델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컨대 연말까지 스와프및 통화옵션에 대한 프라이싱모델및 포트폴리오
시스템을 구축하고 내년엔 채권관련옵션에 관한 가격모델을 만든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선보인 제로코스트옵션도 그중 하나이다.

이처럼 국제금융에 관한한 나름대로 노하우를 자랑하는 두 은행은 금융
파생상품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은행들의 파생상품노하우는 보잘것 없는 편이다.

"일본은행들보다도 10년은 뒤졌다"(양원모산업은행외화자금실장)

"산업은행과 외환은행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라면 다른 은행들은
이제 일어서는 연습을 하는 수준"(이수신외환은행외화자금부장)인 실정이다.

파생상품을 둘러싼 두 은행의 공방은 분명 국내은행의 국제화를 한단계
"레벨업"시키는 과정임에 틀림없다.

< 육동인.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