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오후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례적인 경험을 했다.

청와대내에서도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는 대통령관저 바로뒷편 언덕
으로 안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요즘 한창 시중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높이 1m10 크기의
지그마한 불상을 구경할수 있었다.

물론 청와대기자들의 이날경험은 최근 시중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불상
관련루머와 무관치않다.

시중의 루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청와대 경내에는 일제때부터 불상이 있었다. 노태우대통령때까지 귀하게
모셔졌던 이 불상을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대통령이 철거해 버렸다. 최근
성수대교붕괴사고에다 충주호유람선사고등 대형사고가 잇따라 터진것은 바로
이 불상을 뿌리채 뽑아버렸기 때문이다"

대충 이런내용의 루머는 매우 광범위하고 그럴듯하게 시중에 퍼져 있었다.

심지어 호주에서 발행되는 파이넨셜 리뷰지에 이같은 내용이 보도됐는가
하면 모종교방송 기자는 청와대측에 정식으로 확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청와대출입기자들조차 소문이 워낙 그럴듯해 불상철거 사실여부를 묻는
외부의 질문에 확답을 주저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청와대는 더이상 루머를 방치할 경우 마치 철거사실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쳐질 것이라고 판단, 이날오후 평상시 경호및 보안상 통제가
엄격한 금지구역으로 기자들을 안내했던 것이다.

현장을 본 결과 불상은 누각아래 단아하게 잘 보존되어 있었다.

혹시 철거했다가 말썽이 나자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은게 아닌가 하고
열심히 좌우상하를 살폈지만 그런흔적은 없었다.

전면에는 "석조여래좌상"이란 제목의 불상유래에 관한 안내문도 있었다.

원래 이불상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경주 남산에 있던
것을 일제때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불상을 둘러보고온 기자들은 모두 참 좋은 구경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 2년가까이 청와대를 출입한 기자들이지만 대통령의 집무실이 아닌
관저를 지나쳐본 것이나 문제의 불상을 접한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언비어가 판을 치는 세태를 생각하면 한편으론 씁쓸한 기분도
지울수 없었다.

그리고 이토록 허무맹랑한 유언비어가 판을 치도록 만든 책임의 일단이
정부에는 없는가 하는 질문을 해보기도 했다.

< 김기웅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