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자동차 판매망 재편을 추진하는 유럽연합(EU)경쟁력위원회와 전통고수
를 주장하는 자동차업계간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논쟁의 초점은 95년6월말로 만료되는 블록 예외(block exemption)규정의
폐지여부.

지난 85년10년기한으로 입안된 이 규정은 하나의 딜러는 특정업체의
자동차만 판매토록하는등 유럽내 자동차업체들의 독점적이고 선택적인
자동차판매망구축을 허용해왔다.

EU경쟁력위원회는 85년 이 규정을 입안할 당시 자동차가격을 장기적으로
12%이상, 단기적으로는 18%이상 인상 또는 인하하지 말것이며 소비자들은
회원국 어디에서나 자동차를 구입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었다.

EU경쟁력위원회는 그러나 이 규정이 유럽자동차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이
돼왔다고 인식하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규정은 유럽자동차업체의 경쟁력
제고와 소비자편의제공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며 폐지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업체에 얽매여있는 딜러들로 하여금 여러업체 자동차를 판매할수
있도록 함으로써 효율경영을 유도하고 소비자들에게도 차량선택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비자단체들도 위원회의 주장에 전폭 동조하고 있다.

짐 머레이 유럽소비자연맹(BEUC)회장은 "유럽의 현행 자동차판매구조는
소비자들에게 불리할뿐"이라며 "95년이후 새로운 방식의 자동차유통시스템이
출현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한다.

BEUC는 물론 서비스전문화를 꾀할수 있는 현행방식의 장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방식은 지역적으로 판매점의 수를 제한하는데다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비교구매하기 위해 여러 판매점을 돌아다녀야 하는등 소비자편의가
배려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규정입안시 내걸었던 단서조항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유럽에서 선을보인 자동차중 22.5%가 20%이상 가격이 변동했으며
다른나라에서의 자동차구입도 딜러와 제조업체 그리고 각국의 제도적 장애로
인해 극히 어렵다는 위원회의 최근 조사는 BEUC의 입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에대해 자동차업체들은 강력 반발, 현행제도유지를 촉구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는 "위원회가 현행제도를 바꿔야만 하는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동차는 세탁기나 음식료품처럼 취급될수
있는게 아니다"고 못박고 있다.

협회는 또 유럽자동차업체들이 현행제도 아래서 새모델개발등에 주력, 각기
경쟁력을 제고해 왔다고 말한다.

86년부터 지난해까지 독일시장에서 팔린 자동차브랜드수는 44개에서 66개로
50%나 늘었으며 이 기간중 프랑스에서 판매된 자동차모델도 5백15개에서
7백58개로 47%나 증가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애프터서비스 역시 스피디, 마이다스, 퀵 피트등 독자적인 서비스업체에
의해 대폭 향상됐다는 점을 꼽고 있다.

협회는 또 자동차와는 달리 여러업체제품을 다양하게 취급하는 식품류의
경우 국가간 가격차이가 1백%나 된다며 자동차의 가격차는 현행 판매제도의
결함이라기 보다는 각국간 환율변동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나 독일의 소비자들이 현행 판매제도를 선호하고 있다는 자체조사
결과도 제시하고 있다.

협회는 또 유럽 대형자동차업체들이 자동차품질개발과 더불어 앞으로
10년동안 60억유럽통화단위(ECU)를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는등 현행판매제도
를 신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대적인 경영합리화작업아래서 일본및 미국산자동차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현행판매제도는 유지돼야 한다는게 협회의
입장으로 판매망구조개편을 놓고 벌이는 EU경쟁력위원회와 소비자단체
그리고 자동차업체사이의 싸움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김재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