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규칙의 가장 핵심적 판단기준은 "고의냐,아니냐"에 있다.

OB나 로스트볼같이 골퍼의 어쩔수 없는 실수는 1벌타이지만 볼위치를
옮기거나 라이를 개선하는등 규칙위반을 알면서도 범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2벌타에서부터 실격까지 엄하게 다스리고 있다.

다시말해 실수는 용서하지만 고의적 규칙위반은 절대 용납할수 없다는게
골프의 정신이다.

박남신(36) 케이스도 바로 이런측면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남신은 지난해 11월부터 무기한 자격정지중이다.

이유는 지난해 월드컵대회에서 실제타수보다 적게 적은 스코어카드에
사인을 하고 제출했다는 것.

그 이전 던힐컵대회때도 박은 "잠정구 불선언"으로 실격당했었다.

여기서 잠정구불선언은 징계의 사유가 될수없다.

그것은 어떤선수도 늘 범할수 있는 "비고의적" 사건으로 봐야 한다.

마커가 보기를 파로 적은 것을 간과, 그대로 사인하고 제출한 월드컵사건은
박본인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

알고도 그랬는지 정말 착각에 의해 그랬는지는 제3자가 따질수도 없고
따질만한 성질의 것도 아니다.

"따질만한 성질이 아니라는 것"은 진실이 어디에 있건 그것은 "골퍼라는
인간의 실수적 측면"에서 봐야지 경찰이 피의자 심문하듯 그 "동기"를
밝혀내야 하는 사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건 박은 그 사건으로 인해 프로골퍼로서는 평생의 한이 될
정도로 가장 가혹한 심적 물리적처벌을 이미 받았고 아직도 받고 있다는
점이다.

36세라는 골프가 가장 무르익을 나이에 한시즌을 몽땅 대회에 출전할수
없었다는 사실은 그가 감당해야 하고 그가 감당할수 있는 한계를 이미
넘어섰다고 볼수 있다.

"박남신사건"은 한국프로골프의 전체수준면에서 따져봐야 하는 사건이지
박을 희생양으로 해서 박개인을 무참하게 짓밟아야 하는 사건은 아니다.

설령 박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어떤 경종을 울린다고 해도 "박이 희생한
정도"는 "한국적 몰매주의"의 한계까지도 넘어섰다.

한국프로골프협회는 징계중인 다른선수들과의 형평성때문에 박의 징계를
풀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골프규칙의 핵심인 "고의냐,아니냐"조차
구별하지 않고 있는 태도이다.

박을 상습적스코어조작자와 동일선상에 놓고 보는 것은 "실수의 가능성"을
모두 고의로 몰고가는 식이다.

과연 한국프로골프협회나 프로골퍼자신들이 박에게 돌팔매질을 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박은 그가 저지른 실수, 그로인해 소위 "국가망신"을 시켰다는 비난에
대해 대가를 치를 만큼 치렀다고 볼수 있다.

현 시점에서 더이상 그의 징계를 계속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볼
스트라이킹"이 가장 좋은 선수 한명을 매장시키는 것과 같다.

내년봄에 그의 징계를 푸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올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 풀어야 그가 내년시즌에 "좋은 성적"으로 속죄
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 김흥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