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준비금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은행간 ''돈뺏기 전쟁''이 벌어졌던 날.
전쟁의 사령관이 은행장이었다면 ''소총수''들은 다름아닌 자금팀이었다.
자금팀은 흔히 자금부에서도 지급준비금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루짜리 콜자금을 사고파는 ''콜대리''들이 대표적. 이외에도 서울명동지점
당좌담당자들도 넓은 의미의 자금팀에 포함된다.
이들이 뛰는데 따라 수천억원의 부족자금도 너끈히 메울수 있어서다.
K은행자금부의 H대리(34)는 토요일인 지난13일 오후6시가 돼서야 퇴근했다.
며칠동안 잠잠하던 콜시장이 이날 요동을 쳤다. 15일이 휴일인 까닭에 각
은행들이 콜자금을 서로 끌어가려 했던 것.
예컨대 13일 1백억원의 콜자금을 확보하면 적수기준으로 지급준비금
(지준)을 3백억원 쌓는 효과가 난다.
은행들은 특히 지난 6일 한은으로부터 ''뜨거운 맛''을 봤던 터였다. 그래서
''국지전''이긴 했지만 다시 자금뜰어 모으기싸움이 벌어졌다.
콜금리는 법정상한선인 연25% 가까이 치솟았고. H대리는 이른바 ''콜대리''
다.
여유자금은 비싼 값에 팔고 부족자금은 싼값에 사오는게 임무다. 주로
대리들이 전화를 통해 자금을 사고 판다고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콜대리들은 한달에 두번은 ''지옥문턱''까지 갔다온다. 지급준비금을 매달
7일과 22일 두번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남을 때도 고민이지만 돈이 모자랄때는 더 큰 문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준은 채워놓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권 전체적으로 돈이 모자랄 때엔 콜대리들도 손을 놓을수 밖에
없다. 7월하반월 지준마감일인 지난6일이 대표적이었다.
이럴 경우에 필요한 사람이 서울명동지점의 당좌담당자들이다. 아무래도
거액을 단기간에 움직이는 투자금융사들로부터 뭉칫돈을 끌어 올수
있어서다.
"무슨수를 써서라도 ''생타''를 몰아와. 1천은 ''과타''해야해" S은행명동
지점의 L씨(30)는 지난5일 오후 이런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본점자금부. 일반인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암호문''을 해독
하면 이렇다.
타점권은 다른은행이 지급지인 당좌수표 약속어음 등을 가리킨다. 정상적
인 상거래나 자금결제때 주고받는 돈이다.
그렇지 않고 필요에 의해 입금받는 타점권이 바로 ''생타''. 억지로 받아
내는 타점권이라는 뜻이다.
''과타''는 은행이 받아들인 타점권이 내준 돈보다 더 많은 상태를 말한다.
이 암호문은 따라서 ''거래업체로부터 자금결제에 관계없는 타점권을 1천억원
받아내라''는 지시였다.
명동지점의 거래업체는 대부분 인근의 투자금융회사. 투금사들로부터
1천억원이상 타점권예금을 받아내는 것이 L씨의 이날 임무였다.
무기는 ''협박과읍소''. "앞으로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협조해달라"와
"이번 한번만 봐 주십시오"가 되풀이됐다.
그러나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서울시내 8개 투금사 모두 자기자금도
막지못해 은행들에게 타입대를 요청하고 나섰던 것.
타점권을 끌어오는 것도 중요했지만 다른 은행에 자기은행 수표를 입금
시키지 못하도록 막는것도 다급해졌다.
타입대를 주는 은행은 투금사들에게 대출금의 3배이상의 타점권을 요구
할게 뻔했다. 투금사들이 행여 자기은행수표라도 덜컥 입금한다면 애써
끌어모은 타점권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자기은행수표에 대해선 다음날 결제를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지준은
그만큼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1천억과타'' 지시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해줘라" "못해준다"의
실랑이가 계속되기를 10여시간.
결국 밤을 꼬박 세워 6일 새벽4시가 돼서야 상황은 종료됐다. 이날 시중
은행명동지점 당좌담당자들은 L씨와 같은 일을 모두 겪었다.
한 투자금융사에 4-5개 은행의 당좌담당자들이 얽혀 힘겨루기까지 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이들이 이렇게 본점자금팀의 ''별동대''로 활약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각 은행 명동지점은 서울지역 8개투금사 모두와 거래한다.
투금사는 하루짜리 자금이동이 빈번하다. 한 은행명동지점에서 하루
교환되는 투금사들의 물량은 4천억원 안팎.
대부분 하루짜리 자금이라 은행의 단기자금확보엔 중요할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은 평소에도 그렇지만 지준마감날이면 언제나 본점자금팀과
호흡을 같이 한다.
은행자금팀. 이들은 그야말로 현장에서 몸으로 때우며 부족자금을 메우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원활하게 자금수급을 하기 위해선 자금기획팀이나 운용팀이 제대로
예측을 해주어야 한다.
윗사람들이 적당히 지원사격도 하고 신속한 판단을 내려주는 것도 필수적
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포병지원을 받지 못하는 소총수에 머무르고 만다.
그리고 결과는 한가지다. 지준전쟁에서의 패배다.
< 하영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