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2일 워싱턴에서 열렸던 브레튼우즈 창립 50주년 기념총회를 계기로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위상 재정립이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금융시장의 양대축인 IBRD와 IMF는 지난 44년 이른바 브레튼우즈체제
출범이후 줄곧 세계 각국 경제의 "주치의" 역할을 자처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양대기관의 입지는 "은퇴"라는 표현이 붙을 만큼
축소되고 말았다.

세계 각국이 IBRD나 IMF로 부터 돈을 빌려쓰기 위해 안달 하던 50년전
당시와는 금융시장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양기관이 창설될 당시에는 생각도 못했던 월가의 등장등 민간자본시장의
급부상은 이제 개발도상국들마저 민간시장 쪽으로 발길을 돌리도록 만들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개도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5백6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정부개발원조(5백10억달러)는 물론 IBRD나 IMF의 자금지원을 훨씬
초과하는 것이다.

IBRD 자체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말로 끝난 94회계연도중 IBRD의 전체
신규대출 규모는 고작 2백8억달러에 불과했다.

금융전문가들은 개도국으로의 민간자본 유입은 90년대 내내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면서 IMF와 IBRD의 설땅을 대폭 잠식해 나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는 민간자본의 속성상 동아시아등 이른바
이머징 마킷(신흥시장)에 대한 매력을 쉽게 포기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전문가들은 이번 브레튼우즈 총회에서도 논의됐듯이 오늘날
IMF와 IBRD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일부극단론자들이 제기하는 은퇴가 아니라
위상 재정립이라고 강조한다.

이들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위상 재정립은 두가지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나는 민간자본이 손을 대기를 꺼려하고 있는 아프리카나 구소련권등
컨트리리스크가 높은 지역에 대한 대출강화다.

다른 하나는 기존의 고전적인 금융업무 보다는 여성교육이나 의료개혁등
개발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 확대다.

미유력 증권회사인 샐러먼 브러더스사의 데릭 모건 회장은 "민간자본은
이익이 나는 곳은 어디든지 거침없이 뛰어든다. 그러나 전도가 불투명한
곳에는 빗장을 건다"라고 꼬집는다.

이는 곧 동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 같은 유망경제권에만 민간자본이 집중
되고 있고 아프리카나 구소련권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어 이들 지역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IBRD및 IMF이사인 프랑스의 마르크 앙투안느 오트망은 특히 공산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틈바구니에서 발목이 잡혀있는 구소련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IMF는 이들 지역에 대한 지원을 주저해 왔다.

이는 지난 80년대에 페루와 잠비아 같은 국가들이 IMF 차관을 갚지않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당시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오트망 이사는 IMF가 러시아와의 스탠바이 협약(IMF가맹국이 국제
수지적자로 인해 단기적인 보전재원이 필요한 경우 쿼터의 일정비율에 해당
하는 금액을 추가적인 협의절차 없이 인출 사용할수 있도록 사전에 합의하는
제도)을 조만간 기존의 40억달러에서 60억달러로 확대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한다.

한편으로 민간부문의 금융지원 활동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IBRD나 IMF는
기존의 전통적 금융업무보다는 경제적으로 매우 시급한 일련의 개발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IBRD 아시아 전문가인 린 베네트는 "인도 펀잡지방의 관개수로공사에서
보듯이 IBRD는 이제 여성에 대한 기초교육 가족계획 의료보건체제 개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등과 같은 개발관련 업무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고 강조한다.

이와함께 이번 브레튼우즈총회에서도 지적했듯이 양기구의 방만한 조직을
효율성과 결과위주의 능률적 조직으로 개편하는 한편 선진국에 대한 지원을
줄여 경제의 남북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김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