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최초의 돌다리 광통교가 복원된다.

이와동시에 광통교에 얽힌 사연을 엮은 이상우(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
이상우.56)씨의 역사추리소설 "북악에 부는 바람"(동아출판사간)이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광통교는 지금의 광교사거리 자리에 있던 다리로 58년 청계천 복개 공사때
땅에 묻혀 모습을 감췄던 한양 최초의 돌다리.

큰 광통교 또는 큰 광교 대광교라고도 불린 이다리는 장방형의 돌에
작은불상이나 구름당초따위의 모양이 새겨져 아담한 멋이 있었다고 한다.

원래 목조다리였던 것을 돌다리로 바꾼것은 조선조 3대왕 태종때였다고
"태종실록"에 전한다.

도성내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둘째부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을
성밖성북으로 옮기면서 남은 석물로 광교를 건설했던것.

이상우씨의 "북악에 부는 바람"은 정릉을 성밖으로 옮기면서 새로 준설된
광통교를 중심으로 태조 이성계의 둘째부인 신덕왕후 강씨와 방원(태종)의
대립의 역사를 픽션화한 현대 사건과 짜맞춰 다룬 작품.

이성계는 첫째부인 신의왕후에게서 6아들을 둘째부인 현비에게서 두아들을
얻는다.

둘째부인을 특히 아꼈던 태조는 둘째부인 신덕왕후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다.

신덕왕후가 태조보다 일찍 세상을 뜨자 태조는 그를 못잊어 도성내에
신덕왕후의 묘(정릉)을 만들고 옆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첫째부인 소생 방원은 아버지를 무력화시키고 형제를 죽이면서
창칼로 왕위에 집권, 태종이 된다.

태종은 계모 신덕왕후의 묘를 파서 멀리 보내고 그 묘석을 파다가 성안
광통교 다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한다.

이소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정릉을 옮길때 행방이 묘연해진 문화재를
둘러싸고 현대 인물이 펼치는 추리와 추격전 이야기를 짜맞춘 역사추리물.

조선초 건축물에 관한 논문을 쓰려던 이용세는 옛날 문헌에서 읽은 광통교
에 관한 얘기에 흥미를 느껴 사라진 문화재(보물)찾기에 깊이 파진다.

이용세를 도와 이사건에 휘말린 여자친구 민하림은 태종의 반역의 역사를
바탕으로 신덕왕후가 독살됐다는 내용의 역사소설을 쓰고 이이야기가 소설
속의 소설로 펼쳐진다.

이런 와중에 이용세와 문화재 행방을 추적하던 친구 백승일이 살해된다.

이러한 구성으로 전개되는 이작품은 현실과 역사의 수백년 시차를 넘나
드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류의 소설이다.

58년 청계천 복개공사때 땅에 묻힌 광통교는 조흥은행이 창립97주년을
맞아 광교사거리 조흥은행 본점앞에 실물의 1/4크기로 복원했다.

조흥은행은 18일 오후4시 새로 축소복원된 광통교 앞에서 이원종서울
특별시장 이종연조흥은행장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를 갖는다.

이날 기념행사에는 다리밟기놀이가 재현되고 시민과 함께 하는 뒷풀이
마당이 펼쳐지며 "조선제일의 다리 광통교"라는 관계자료가 무료 배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