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저가상품용의 제2브랜드를 만들기로 한 히타치제작소와
히타치가전의 결정은 일본전자메이커의 경영전략에 큰 분수령을 긋는
획기적 사건이라 할만하다.

고기능 고부가가치화를 지향해오던 일본전자메이커들이 유통시장에
확산되고 있는 저가지향추세에 적극 대응하겠음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격인하문제에 관한한 유통업체에 끌려오던
입장이던 메이커측에서 스스로 변신 을 공언한 것이다.

제2브랜드의 상품은 히타치 브랜드보다 30~50%가량 싸게 가격을 설정
하겠다는 것이 히타치의 복안이다. 우선 조리용 가전제품에서부터
신브랜드를 도입, 소비자들의 반응을 점검한후 세탁기 에어콘 TV
오디오기기등으로 적용영역을 넓혀나간다는 계산이다.

히타치의 변신선언은 내용자체보다도 제2브랜드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원인과 이로인한 파장이 더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히타치가 획기적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게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가격 전쟁에서의 패퇴다. 일본열도를 휩쓰는 가격인하의 물결과 함께
디스카운트 스토어들이 급성장하는 대신 가전업체들의 계열대리점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할인전문점들은 저가격을 무기로 업계전체 가전제품판매량의 6%를
차지하는 위치까지 급부상했다. 가전업체의 계열판매점과 양판점에
대응하는 제3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들 할인전문점들의 시장셰어는
수년내 20%선에까지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계열대리점에의 의존도가 높은 대형가전업체들의 입장은 어려워졌다.
특히 히타치는 그중에서도 가장 곤란한 형편이다. 히타치의 가전사업
부문은 지난3월 끝난 93회계연도결산에서 4백55억엔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3년연속 대폭적인 적자를 면치못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이다.

히타치그룹의 이같은 부진은 경기불황보다도 판매조직과 상품가격 수요
패턴변화에의 적응지연등에 더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근본적인 대처방안을 찾지 않고는 정상회복이
어렵다는 얘기다.

히타치의 제2브랜드도입은 말할 것도 없이 제3세력으로 등장한 할인
전문점에의 대응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시장셰어를 확대해가는 이들
점포에 제품을 보급, 활로를 뚫는다는 복안이다.

히타치의 제2브랜드도입은 유통망재편이라는 거대한 파장을 불러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양판점에 밀리고 있는
계열판매점들로서는 더욱 힘든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히타치는 제2브랜드상품은 계열판매점 양판점 할인점 구분없이
공급할 것이라며 계열판매점들을 설득하고 있으나 가격할인능력이
양판점이나 할인점에 미치지 못하는 계열판매점들이 고전을 겪을 것은
뻔한 이치다.

저가격을 내세우는 양판점과 할인점의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더구나 히타치는 지난해 이미 실적이 나쁜 계열판매점들은
더이상 지원하지 않겠다는 방침까지 발표해놓은 바있다.

히타치의 변신시도는 대단한 모험이다. 성공할 경우 유통업체에 빼앗긴
가격주도권을 되찾고 여타업체들도 제2브랜드를 개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계열판매점들의 이탈이 속출하고 기존브랜드 이미지에마저 치명적
손상을 가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있다. 더구나 일본에서는 지난
70년대 다이에와 크라운사가 공동으로 저가가전제품을 개발했다가 실패한
경험도 있다.

히타치의 제2브랜드개발선언은 그래서 사운을 건 승부수다. 격심한 가격
경쟁은 거대가전업체에까지 크나큰 모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이봉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