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를 도쿄로 개칭하고 그곳을 새로운 일본의 수도로 선포한 것은
1868년 7월17일이었다.

그러니까 중립노선을 표방했던 가와이쓰구노스케가 이끄는 나가오카
번군을 중심으로 한 오우에쓰열번동맹군과 관군과의 전투가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유신을 위한 전쟁을 마무리한 다음 새로운 일본을 건설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토의 중심부에 해당되는 에도를 수도로 정하는게 옳겠다는
것이 유신 주체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런데 아직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실을 공포한 것은 나가오카의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관군의사기를 돋구고 오우에쓰열번
동맹군에게 심리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미 천하는 유신정부의 손아귀에 든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널리 알려서 관동과 동북지방의 뒤숭숭한 민심을 사로잡기 위한 방편
이기도 하였다.

천도의 선포가 있은 다음달 8월27일에 메이지천황이 정식으로 즉위하는
대례가 거행되었고 이어 9월8일에는 새로운 연호를 메이지로 공포했다.

그리고 한 천황 아래서는 한 연호를 쓰는 일세일원제를 채택하였다.
그전에는 같은 천황 밑에서도 어떤 큰 계기가 생기면 연호를 바꾸곤
했던 것이다.

천도란 결코 손쉬운 이사가 아니어서 교토의 모든 통치기관이 도쿄로
옮기고 메이지천황이 에도성에 입성하여 명실공히 새로운 수도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이듬해 3월이었다.

천도가 이루어진 두달뒤에 에노모토가케아키가 홋카이도에 세운
에소공화국이 무너져서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한가닥 뿌리까지 깨끗이
뽑혀 버렸다.

무진전쟁이 드디어 막을 내려 이제 일본이라는 나라는 쇼군대신 천황이
통치하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것이었다.

막번제라는 무인중심의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서구식 자본주의 근대국가로
탈바꿈해 가는 역사의 새로운 궤도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천황의 거소로 바뀐 에도성의 옛주인이었던 도쿠가와 가문은 4백만석에서
70만석으로 감해져서 순부(준부)로 옮겨 그곳에서 일단 명맥을 유지하도록
조치가 내려졌다. 가주는 도쿠가와이에사도였다.

유신정부는 제도 개혁에 착수했다. 맨먼저 손을 댄 것이 번이라는
지방정권을 없애는 일이었다. 막부가 없어졌는데 그 하부 조직인 번은
여전히 그대로 존속하고 있으니 모순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을 없애거나 뜯어고쳐서 행정체계를 일신하는 것이 급선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