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용씨는 대만 기미실업이란 회사의 회장이다. 기미실업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자동차범퍼나 전자제품 부품의 재료로 널리
쓰이는 ABS수지분야에서 세계최대 메이커다.

대만에서 60% 중국70% 홍콩50% 동남아시아4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허회장은 탁월한 경영수완을 지닌 사업가이자 바이올린을 켜는
예술인이며 장자의 사상을 실천하는 철학인이다.

그는 1928년 대남시에서 10남매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다섯살이란
어린나이에 "어째 이렇게 가난할까"라는 생각을 했을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나이어린 누이들은 바느질삯으로 가계를 도와야했을 정도였다.
지역내의 고급공업학교 부속중학교를 마치고 나서 동네철공소에서 일을
배웠다.

몇년동안 고사리손으로 돈을 모아 고급공업학교에 들어갔다. 학교를
졸업한후 형제3명이 모여 완구 일용잡화를 만드는 공장을 차렸다.

20세였던 이때부터 허회장은 사업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포인트를 파악해 경영자원을 집중시키는 능력이었다. 그는 완구제품을
만드는데 있어서 포인트는 금형이라고 생각했다. 금형설비와 기능공에
모든 자금을 쏟아부었다. 외국의 금형제품을 들여와 석고를 떠내 금형제조
코스트를 낮추는 연구에 시일을 보냈다.

다른 경쟁업체가 한시즌에 서너개의 신제품을 내놓는데 반해 기미실업은
20개 30개의 신제품을 출하시켰다. 대만완구업계의 톱메이커로 올라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허회장은 보다 대형사업을 벌이기 위해
완구사업을 형들에게 넘겨주고 31세의 나이에 화학분야에 뛰어들었다.

도료에서 시작,조명기구에 쓰이는 아크릴판제조에 이르렀다. 비행기의
방풍유리를 녹인 재생원료를 들여오는등 원가절감을 통해 이분야에서도
쉽게 대만 최고업체로 등극했다.

현재의 ABS등 수지사업은 10년전에 시작한 것이다. 미쓰비시유화에서
기술을 들여오면서 출발했다. 10년만에 세계최정상 기업으로 성장시킨
비결은 철저한 코스트삭감원리에 있다. 공장설계는 단순하다. 설계와
시공은 1백%자회사인 보인공정이 담당,건설코스트를 크게 낮췄다. 전
종업원 1천4백여명중 본사 연구개발등 간접부문에 종사하는 인력은 불과
1백50명이다. 공장 본사 연구소 어디에도 인사부나 영업부가 없다.

수치로 보면 기미실업의 조직과 생산의 슬림화가 얼마나 철저한지 알
수있다. 수지 총생산량이 8만2천여t이었던 83년에 종업원은 9백3명이었다.
10년만인 93년 생산량은 87만4천8백t으로 10배이상 늘어났지만 종업원수는
1천4백2명으로 증가하는데 그치고 있다.

허회장의 경영은 장자철학에서 나오고 있다. 그는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호접지몽의 얘기를 곧잘한다. 장주(장자의 이름)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다. 여행이 즐거운 나머지 자신이 장주임을 잊는다. 눈을 뜨니
틀림없는 장주였다. 과연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것인가,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있는 것인가로 이어지는 호접지몽.

대만국민당은 장자철학을 소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유포를 금지시켰지만
허회장은 이것을 철저한 상대주의로 평가한다. 그리고 이런 장자철학은
경영에 비쳐진다.

허회장은 종업원지주제도를 21년전부터 시작하고 있다. 종업원과의 이해
대립을 주주가 되게 함으로써 해소시키고자 했다. 주식의 매입자금을
회사가 무이자로 대출해줘 현재는 85%의 종업원이 주주로 돼있다.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대립해소의 철학은 나타난다. 수지에 쓰이는 원료는
가격변동이 심하다. 외환변동에 의해서도 고객들은 예상치못했던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허회장은 고객들과의 관계에서 이런 리스크(위험)를
배제함으로써 대립관계를 해소한다. 기미실업이 부담하는 것이다.

허회장은 이익의 사회환원이란 차원에서 문화기금등을 통해 예술가지원에
힘을 아끼지 않고있다.

<박재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