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 여자"는 세련된 영화다.

예술성과 상업성이 절묘하게 조화돼있다. 섹스와 유머를 가미한 아슬
아슬한 진행, 상징성 강한 영상이 시종 긴장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레이몽 장 원작의 "책읽어주는 여자" "베라B의 환상과 그외의 이야기"두
편을 여성심리읽기의 전문가라는 미셀 드빌감독이 영화화했다.

콩스탕스(미우 미우)는 책을 좋아하는 여자. 어느날 밤 동거하는 애인에게
책을 읽어주다 그 책의 주인공 마리가 돼버린다.

마리는 "젊은 사람이 집에서 책을 읽어줍니다"라는 신문광고를 낸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첫 의뢰인은 반신불수의
미소년 에릭. 마리는 성적호기심이 많은 에릭을 위해 치맛자락을 슬쩍 걷어
올려보이기도 한다.

두번째 의뢰인은 장군의 미망인. 마리는 미망인에게 "전쟁과 평화"를 읽어
주고 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을 들려준다. 침대에 누워만 있던 미망인이
벌떡 일어난다. 마리는 독신의 사장에게는 침대에서 뒤라스의 "연인"을
읽어주고 여섯살 소녀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들려주고 놀이동산
에 놀러간다. 고고한 노판사앞에서는 그가 부탁한 사드의 "소돔의백이십일"
을 낭독하기도 한다.

책을 읽은 때마다 듣는 사람들과 마리는 꿈과 현실을 오가는 환상의
세계속에 빠진다.

책읽어주는 여자는 누구인가. 그것이 영상문화를 뜻하는 것임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TV와 영화 비디오가 그것이다. 책을 읽어주는 기계들.

책읽어주는 여자는 의뢰인들과 꿈과 희망을 교환하기도 하지만 그 통로는
대부분 섹스다. 섹스를 게임정도로 여기는 가치관이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그 대상이 책읽어주는 여자가 아니라 TV나 영화라고 할 때 혼란은 사라
진다. 홀로 책을 읽을 수 없고 누군가가 읽어주어야하는 시대. 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영상은 우리에게 속살을 전부 내보이며 유혹하고 있다.
영상문화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몬트리올영화제 그랑프리작. 각 인물의 분위기 묘사용으로 전편에 흐르는
베토벤의 선율 또한 인상적인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