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대의 협동조합 조직이며 임직원수로는 한국전력 다음의 거대한
기관인 농협을 6년동안 이끌어온 한호선 농협중앙회장(58)은 농협 말단서기
(공채1기)에서 출발해 27년만에 6백만 농민의 대표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부회장으로 재직할 당시인 지난 88년 윤근환 당시 중앙회장이 농림수산부
장관으로 입각함에 따라 회장의 잔여 임기를 채운 그는 민주화 추세의
순풍을 타고 90년 4월 조합장들의 직선으로 임기 4년의 초대 민선회장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불독""멧돼지"라는 닉네임이 말해주듯 저돌적인 추진력을 지닌 인물로
유명한 그는 별명에 걸맞게 재임기간중 적지않은 일화를 남겼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 타결을 앞두고는 스위스로 날아가 둔켈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사무총장을 직접 만나 쌀시장개방의 부당성을 강력히
주장했는가 하면 협상 현장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농산물 시장 개방에 따른
국내농가의 위기의식을 적극 대변하기도 했다.

이같은 그의 직선적 성격은 최초의 직선회장으로서 농협의 위상강화에
앞장서왔다는 평가와 기대를 내부로부터 받아온 반면 업무처리가 독선적
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적지않게 파생시켰다.

한회장은 재임기간중 농협의 유통,가공사업을 확대하는등 업무영역을
적극적으로 넓혀왔지만 독선적성격은 정부의 기업농구상에 반대하는등 종종
정부당국과도 마찰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제기획원이 설을 앞두고 농협이 서울 가락동 직배센터에서 마늘,
양파를 비싸게 팔고 있다고 지적하자 직접 담당국장과 설전을 벌여 담당
직원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했다는 후문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사건이 그의 독선적인 업무처리와 중앙회장 연임을겨냥한
무리수에서 비롯됐다는 견해도 대두되고 있다.

서울출신으로 농협중앙회가 창설된 지난61년 공채1기로 입사한 그는 입사
직후 강원도 양주군지부에서 서기로 근무했으며 69년에 농협중앙회 지도
과장으로 승진했는데 이때 농협조직을 면단위로 통합하고 농협연쇄점을
만드는등 상당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같은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3공화국 시절 대통령비서실 새마을담당
비서관으로 발탁됐으며 80년 농협중앙회이사,83년 농협중앙회부회장으로
승진하는등 쾌조의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우리농산물애용운동의 상징적 용어로 굳어진 "신토불이"는 한회장이 처음
사용한 말이자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