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간인노미야와 의논을 한 다음에 일을 추진하는 게 옳겠다는
덴쇼인의 말에 요시노부는 동의를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일어나
세이간인노미야가 기거하고 있는 전각으로 갔다.
그러나 세이간인노미야는 요시노부를 만나주지 않았다.

"황실에 반기를 들고 전쟁을 시작한 역적과는 만날 수가 없다고 그래"
전갈을 하러 들어온 시녀에게 내뱉듯이 한 말이었다.

시녀로부터 그말을 전해들은 요시노부는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내실로 밀고 들어가서,나는 결코 역적이
아니라고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짓이었다. 하는 수 없이 요시노부는 돌아서서 도로 덴쇼인의 방으로 갔다.
그말을 들은 덴쇼인은 이해가 간다는 듯이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간인노미야는 죽은 고메이천황의 누이동생이며 메이지천황의 고모가
아닌가. 그러니까 자기 친정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 장본인을 안
만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싶었던 것이다.

"대모님께서 제가 결코 역적이 아니라는 것을 세이간인노미야께 좀 잘
납득시켜 면담이 성사 되도록 해주십시오" "알았소. 염려 말아요. 내가 잘
얘기를 할테니까요" "고맙습니다. 대모님의 은혜는 길이 잊지 않겠습니다"
요시노부는 깊이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덴쇼인의 방에서 물러났다.

요시노부가 세이간인노미야를 만나게된 것은 사흘 뒤의 일이었다.
시어머니 뻘인 덴쇼인의 자세한 얘기를 들은 세이간인노미야가, "그렇다면
한 번 만나보도록 하지요"하고 생각을 돌렸던 것이다.

세이간인노미야는 스무 살을 조금 넘은 청상이었다. 부군인 십사대 쇼군
이에모치가 조슈 정벌 중에 오사카성에서 스물한 살의 나이로 병사하자
새파란 과수가 되어 쓸쓸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터였다. 의시어머니인
덴쇼인은 삼십대 과수이고,의며느리는 이십대 과수인 것이었다.

아직 가스노미야 시절의 앳된 티가 말끔히 가시질 않은 그녀의 해맑은
얼굴에는 벌써 어딘지 모르게 인생의 그늘이 서려있는 듯이 보였다. 그런
우수에 젖은 얼굴에 살짝 미소를 떠올리며 세이간인노미야는 요시노부를
맞이했다.

그때 요시노부는 덴쇼인과 함께 찾아갔다. 세이간인노미야가 셋이 같이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게 좋겠다고 희망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