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일 경제장관회의에서 물가안정에 최대역점을 두기로 한것은
최근의 물가불안이 신경제의 기조자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돈을 풀어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판에 물가마저
치솟을 경우 수출촉진 투자회복을 통한 경제활성화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는게 정부의 인식이다.

이날 회의에서 제시된 대책은 앞으로 물가안정을 경제운용의 최우선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엿보게 한다. 통화 재정 임금등 주요 경제정책을 물가안정
위주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총동원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이처럼 물가안정에 다급하게 대응하게 된것은 10월현재
소비자물가가 5.4%나 오르는등 이미 연말 억제선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기를 살리기위해선 물가상승은 어느 정도 감수할수 밖에 없다는
경제팀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기존의 정책기조를 대전환하기에는 어려운
대목이 많다. 현실적으로 물가를 잡기위한 정책수단이 제한되어 있을뿐
아니라 금리 투자활성화등 다른 정책목표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금리를 안정시켜 경기를 부추기고 물가도 잡겠다는 정책목표자체가 무리수
를 담고 있는 것이다. 물가안정과 성장이란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다
놓치는 우를 범하지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통화정책의 경우 금리상승의 우려 때문에 급격한 통화긴축은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금리상승을 초래하지 않는 선에서 통화수위를 최대한
낮춘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10월 현재 20.8%인 통화증가율을
연말까지 18%정도까지 끌어내려 통화증발로 인한 물가상승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금융실명제와 금리자유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금리상승을
방치할 수 없는 터이고 보면 통화환수도 한계에 부닥칠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경기활성화를 위해 조기에 착수하겠다고 공언했던 대규모 공공사업을
늦추는방안 역시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를 잡기는
커녕 시중경기만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대규모 국책사업들이
이미 발주시기까지 앞당기겠다고 발표한 사항이 많아 자칫 정부의 공신력만
실추시킬수도있다.

이밖에 정부가 제시한 추곡수매가동결 임금교섭조기타결 등도 의외의
변수가 될수 있어 말그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이다. 수매가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하고 임금안정도 이미 물가가 오른 처지라 반발이 클게
뻔하기 때문이다.

내년중 올리기로 한 공공요금의 인상을 늦춘다는 방안도 이미 예산에
반영돼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예산지원이 없는한 인상요인은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인상요인을 외면하고 억지로 누르는게 상책이
아님은 이미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이처럼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고는 있으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점에서 땜질식 임기응변의 성격이 짙다고 할수
있다. 더구나 지금까지 수출촉진과 투자활성화및 공공사업의 조기추진을
통해 경기활성화에 역점을 두겠다던 정부가 물가안정위주로 선회함으로써
경제정책이 냉탕온탕식으로 왔다갔다 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소지를
안게 됐다.

사실 현재의 경제상황에서 물가를 잡을만한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물가를 잡는 고전적인 방법은 통화를 흡수하고
금리를 올리는 것이나 실명제로 기업도산이 늘고 있는 터라 이도저도
어려운 처지다. 임기응변식의 물가안정대책보다는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요구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박영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