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고교시절 은사 김영신선생님의 유고논문집 "국어학연구"를 전해
받았다.

선생님께서는 남달리 나라말을 사랑하시어 한평생 방언과 고어연구에
몰두하셨다. 우리말과 글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라고
하시면서 틀리기 쉬운 발음과 어법을 엄하게 가르치셨다.

그리고 말과 글은 문화를 담는 그릇이요 민족혼을 이어주는 도구라고
하시면서 자기말과 글을 아끼고 잘 가꾼 민족은 영원하고 문화도
찬란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민족은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하셨다.

유태인은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담아 이어줄 히브리말과 글을 가졌기
때문에 몇천년의 유랑속에서도 하나의 민족으로 남아 결국에는 이스라엘을
건국한 반면 한때 세계를 지배했지만 자기말과 글을 가꾸지 못한 몽고족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일제말 조선어사용금지시대에 비밀리에 우리말을 연구하다 일어난
"조선어학회사건"을 3.1운동에 비기시고 투옥된 이윤재선생과 최현배선생을
가장 존경하셨다.

요즘 국회에서는 예산심의에 앞서 정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벌어지고
있다. "xxx의원님의 질문이 계셨습니다"라는 말을 쉽게 듣는다.
유신시절에는 대통령의 말씀만 주로 "계시더니"이제 의원님들의 말씀도
"계시게"되었다.

때로 나라 "빚"을 걱정하다 머리빗는 "빗"을 얘기하고, "꽃"을 말하다
사전에도 없는 "꼿"을 말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라도 할때는 정말 참담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망가져가는 우리말을 보며 은사님께 여쭈어본다.

"선생님! 질문이 계시다니 이를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말을 아끼고 가꾸기 위한 대책에 대하여 "의원님들의 질문이
있거나" "의원님들께서 질문을 하시고", "장관님들의 답변이 있거나"
"장관님들께서 답변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