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너무 낮죠. 조금 더 높이 거는 게 낫겠어요. 저 작품들은 아무래도
프레임을 없애야겠어요. 아래층 통에 물 채우는 일은 다 됐나요"

설치작가 최재은씨(40)는 최근 열흘동안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화랑에서
살다시피 했다.

20일~11월9일 국제화랑(735-8449)에서 갖는 아홉번째 개인전을 위해 오전
10시부터 오후6시까지 꼬박 화랑 아래위층을 오르내리며 작업을 진행한 것.

대전엑스포 재생조형관 설계자로 널리 알려진 최씨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발표하는 작품은 "시간의 구조"를 주제로 한 설치와 평면.

검정색페인트를 칠한 24개의 드럼통을 12개는 제대로,12개는 거꾸로
설치한뒤 아래쪽드럼통에는 물을 가득 채우고 위쪽드럼통에는 조명등과
온도계 말린나비등을 달아놓은 대형설치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순
긴장하게 만든다.

물체가 실제로 매달려있는 것은 위쪽이지만 보이는 것은 아래쪽 물속에
비쳐진 모습이다. 불빛과 온도계 나비등은 물이 흔들리는데 따라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하며 커졌다
작아지기도 한다.

"엔트로피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지거나 혹은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에너지의 양과 상태및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요"

최씨는 또 이번 개인전에서 스스로 "세계지하프로젝트"라고 명명한 작업의
일부를 보여준다.

세계지하프로젝트란 특수제작된 종이를 일정기간(1~5년) 경주와 동경
카이로등 세계 각지역의 땅속(지하 3~5m)에 묻었다가 꺼냈을 때 종이표면에
생기는 화학변화를 특수처리,그 상태로 고착시키는 작업을 말한다.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인 자연의 섭리에 갈수록 빠져들게 됩니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애정도 더해지구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과 생명의 관계를 탐구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최씨는 76년 도일,소게츠미술학교를 졸업한뒤 일본에 거주하며 일본은
물론 구미화단에서 독특한 공간감각을 지닌 대규모 설치작품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는 90년 서울경동교회옥상 설치작품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대전엑스포 재생조형관의 컨셉설계로 더욱 유명해졌다.

<글 박성희기자.사진 양윤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