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장에서는 십오세 이상 육십세까지의 남자 전원이 도끼나
곡괭이 같은 것을 무기 삼아 들고서 소요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자연발생적인 민란이 소기의 목적을 거둘 리가 만무했다.

오나오시는 결국 "에에자나이카"의 운동으로 바뀌었다. 에에자나이카는
좋지 않으냐는 뜻인데,백성들이 떼를 지어서 "에에자나이카,에에자나이카"
하고 민요 가락으로 소리소리 지르며 미친 듯이 춤을 추어대는 것이었다.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좋지 않으냐는 것은 말하자면 반어(반어)인
셈이었다. 까짓놈의 세상 어떻게 된들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냐,될대로
되라지,얼씨구 절씨구,좋구나 좋아.이런 자포자기와 체념,허무감 같은
것이 물씬 물씬 풍기는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통 쏟아져나와 길바닥에서,장바닥에서,혹은 관가 앞의 광장 같은 데서
소리소리 외치며 춤을 추어대는 것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을 절절히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폭력 대신 그런 집단 의식(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광란의 춤을
통해서,다시 말하면 평화적인 수단으로 민초(민초)의 울분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참으로 이색적인 시위인 셈이었다.

백성들의 우치고와시와 요나오시,그리고 에에자나이카의 운동은 말하자면
이미 그 시대가 막다른 벼랑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처럼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이번에는 고오메이천황이 죽었다. 쇼군
이에모치가 사망한지 불과 다섯 달만의 일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1886년 12월 25일이었다. 사인은 천연두(천연두)였다.

그런데 고오메이천황의 사망에 대하여 그것이 병사가 아니라,암살이라는
풍문이 돌았다. 그럴만한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고오메이천황이 자리에 눕게 된 것은 12월 12일이었다. 그전날 궁중에서
"가구라"(신악:신전에서 행하는 무악)가 개최되어 약간 감기 기운이
있었으나 참석을 했는데,이튿날부터 심하게 열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치료에 임한 어의(어의)가 14일에 "가벼운 천연두거나 상한음증
(상한음증)에서 오는 열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고열이 계속되어 식사를
거의 못하고,헛소리를 하며 밤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16일에는 전신에
발진(발진)이 나타났다. 17일에는 정식으로 천연두라는 어의의 발표가
있었다.

그래서 일곱 개의 신사와 일곱 개의 사원에 천황의 쾌유를 비는 의식을
거행하도록 명령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