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사미쓰 역시 영국함대의 위력 앞에 적지아니 기가 질렸고,앞으로 그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다시 찾아와 공격을 할 경우에는 어쩌면 그들 앞에
두손을 들어야 할 그런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침통해 하고있었다.
더구나 이번 전쟁이 자기가 나마무기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었으니, 전적
으로 자기 책임이어서 더욱 괴로웠다.

그런데 오쿠보가 대양이론을 들고 나왔고,중신들이 번의 정책방향의
수정을 건의해 왔으니,마치 살길이라도 열린 것같은 심정이었다.

히사미쓰는 당장 그 자리에서 중신들과 앞으로의 구체적인 대책의 협의에
들어갔다. 대양이, 즉 대결이 아닌 화해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변경했으니
대책은 자명했다. 영국측에 겉으로나마 머리를 숙이고,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장 그들의 이차 내습이 없도록 미연에
방지를 하는 일이었다.

중신들은 모두 그 일을 오쿠보가 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양이론에
공감을 표시했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굴욕적인 그 임무를 아무도 떠맡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히사미쓰도 "그래, 그 일은 오쿠보가 적격이야. 맡아서 잘 처리해 내라구"
하고 명령을 하듯 말했다.

"많은 선임 대관이 계시는데, 국제교섭의 경험이 전혀 없는 제가 그런
중대한 임무를 떠맡다니,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양이를
제가 주장한 터이니 도리가 없군요. 저에게 과분한 임무이기는 하지만
성심껏 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쿠보는 필요이상 겸허한 태도로 마지못해 그 임무를 떠맡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는 옳지,기회가 왔다, 하고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섭정을 곁에서 보좌하는 역할만을 해왔는데,그 범위를 훌쩍
벗어나 자기가 재량권을 가지고서 직접 에도로 가 더구나 영국공사를
상대로 국제교섭을 하게 되었으니,사쓰마의 인물에서 중앙정계에 두각을
나타내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죽마고우이며 지금은
오키노에라부지마에 시마나가시가 되어있는 사이고다카모리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가슴속에 남다른 정치가로서의 야망을 간직하고 있는데,비로소 그
야망의 길이 열리는 듯하니 가슴 벅차지 않을수 없었다.

말하자면 대영강화(대영강화)의 사절(사절)이 된 오쿠보는 먼저 에도로
향했다. 그곳의 사쓰마 번저에 머물면서 나마무기에 있는 영국공사관과
교섭을 갖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