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연기금,체신예금등의 공동자금을 재정투융자사업과 정책금융
등 재정에서 부담하는 재원(재정자금)에 우선 사용하고 국공채 매입에도
충당하도록 한다는 정부의 계획이 간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최근 정부의
신경제5개년계획 재정개혁부문에서는 이러한 계획이 구체화되었다.

본고의 목적은 연기금,특히 국민연금기금의 사회간접자본 충당을 위한
공공자금화에 문제가 있음을 제기하고자 한다. 우선 정책담당자는 연금이
공권력에 의하여 조성된 자금이기 때문에 정부가 공익을 위하여만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연금기금은 국민이 국가로부터 노후생활을 보장받는다는
합의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따라서 연금기금은 이러한 목적에따라
사용되어야하고,연금이 정부의 국민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장기적 부채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국민의 연금권리는 이제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어떠한 정부의 국가적
대의에 의하여도 위협받거나 손상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전국민과
정부,현세대와 후세대간의 장기적이고 신의에 입각한 계약이다.

정부는 이미 조성된 연금기금을 모두 재정에 사용하고 국민연금관리공단
에는 정책적으로 시장금리이하에서 결정되는 공공채이자율 정도를 보장하는
국공채를 제공해주는 것으로써 연금가입자에 대한 의무가 끝난것으로 생각
할지 모른다. 우선 연금기금이 이러한 방식으로 정부자금화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에 관하여 논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가 연금차입에 대하여 지급하는 국공채 이자율은 민간부문에서
운용되어서 얻을수 있는 수익률보다 결코 높을수 없기 때문에 연금재정
운용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큰 적자요인이 된다. 이는 연금제도의 운용에
대한 불신을 낳고 안정적 정착을 어렵게 한다.

연금가입자들은 노후에도 정부가 일정금액의 연금을 안정적으로 보장한다
는 믿음에 따라 낮은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개인저축을 감소시켜 가면서
갹출료를 통상 30년이상의 근로기간동안 납부하고 있다.

특히 현재 계획된 갹출료율하에서도 2040년에 이르면 연금기금은 적자를
면할수 없기 때문에 향후 연금갹출료의 인상이나 연금급부의 인하가 필연적
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둘째 연금기금이 정부의 자금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는 또다른 이유는
민간 자금의 정상적인 흐름을 왜곡시킨다는데 있다. 연금기금은 민간
자본시장,가계와 기업에서 흐르던 자금을 축적한 것이다. 이러한 자금을
정부가 사용한다면 민간부문의 자금흐름이 경색되어 동맥경화현상으로서
이자율의 상승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

88년부터 시행되어 92년까지 5조2,000억원이 조성될 정도의 막대한 기금의
움직임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국민경제에 가져다 줄 부담과 혼란을
신중히 고려하여야 한다.

셋째 연금기금으로부터의 국공채 차입은 상환시 막대한 이자및 원금상환의
부담을 낳게되어 정부가 이를 지급하기 위한 적자재정을 꾸려야할 가능성이
많다. 이는 물가상승 요인이 될뿐 아니라 민간 자본시장에 자금 압박을
낳고,또다른 이자율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을 야기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도외시하게 되면 대다수 국민으로 구성된 연금가입자들은
정부가 국민연금제도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혹을
품게될 것이다. 또한 이는 정부의 공신력 실추에까지 이어져서 앞으로
정부사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을수 없을 것이다.

연금제도에 있어서 정부의 사명은 가입자의 연금권리를 최대한 보장하여
주고 연금제도를 다음 정부,혹은 다음 세대에 온전히 옮겨주는 것이다.

연금기금을 정부의 재정지출에 전용하면서까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재원을 확보해야만 하는 정책당국자들의 어려운 처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사회간접자본은 경제 규모에 따라,혹은 성격에 따라 재원조달 방법
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경제규모가 작았던 60년대에는
사회간접자본의 건설이 전체 국민의 절대적 생존권 수호를 위하여 필요했기
때문에 반강제적 민간저축등에 의하여 재원을 조달할 수 있었고 국민의
지지도 얻을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의 지속적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으로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 경제를 빨리 회생시켜야만 하는
현정부의 조급성이나 연급기금을 동원한 무리한 투자재원의 조달에 따른
경제적 간접 비용을 고려할때,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미래의 어떤
정권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경제운용에 부담이 가지않는 범위에서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부문인 것이다.

사회간접자본도 이제는 민간부문의 강제저축이나 적자재정 등의 화폐증발
에 의한 인플레 세금등에 의하여 조달될 것이 아니라,수익자부담에 입각한
조세원리나 민간자본의 유치 등으로 재원이 조달되어야 한다.

이제는 사회간접자본의 수혜이익집단들이 투자비용에 대한 부담을 철저히
인식하도록 하여,이들이 무임승차자로서 정치권에 대하여 항상 과대한
요구만 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조세에 의한 재원조달 방법이 특히 바람직한 이유는 앞에서 언급된
문제들을 완화시킬수 있을 뿐아니라 조세저항이나 과세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수 있는 조항의 삽입이 언제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민간자본의 유치는 직접적수혜자가 투자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수익과
비용부담의 거리감을 해소할수 있다.

과거와 다른 성격과 규모를 가진 공공사업의 안이한 투자재원 조달방법
으로 인하여 자본시장이 교란되어 장기간 경제성장에 미칠 부정적 지렛대
효과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결국 공공사업의 재원조달방법은 재원조달의 용이성보다는 장기적 경제
안정을 위하여 현세대나 현정부도 일정한 몫의 부담을 감수하는 방향으로
채택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민연금기금은 사회간접자본의 재원으로 전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국민연금관리공단도 이제부터는 연금기금의 운용에 있어서
문민정부에 걸맞는 독자성을 보여야 하며,연금재정의 안정화를 위한 입법
로비력 제고및 제 수단의 성취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연금가입자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