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획원 예산실은 내년 일반회계 예산규모를 43조2천5백억원선으로 결
정했다.이는 올해의 38조5백억원보다 13. 6% 증가한 것이다. 기획원은
이경식부총리와 이석채 예산실장이 26일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데 이어
27일부터 9월11일까지 당정협의를 갖고 최종안을 확정한다. 당정협의나
계수조정과정에서 약간 수정될수는 있으나 대체적인 규모는 이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게 과거의 관례다.
기획원의 예산시안은 한마디로 형식은 균형예산이나 내용면에선 적자예산
이라고 평가할수 있다. 당초 예산편성작업을 시작할때 "세입내세출"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균형예산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노력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민자당이 요구한 예산증가율이 15%선 이었음에도 이보다 낮은 13%대의
증가율을 제시한데서도 이같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적자예산을 편성해서
라도 정부가 할일은 해야 한다."는 민자당의 주장이 상당히 수용되지 않은
셈이다.
기획원이 당의 주장을 1백% 반영하지 못한데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한번 적자예산에 발을 들여놓으면 벗어나기가 극히 어렵다는 논리다. 매년
적자규모가 눈덩이 처럼 불어날게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세입의 테두리 안에서 세출을 맞추었다는 게 기획원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예산증가율을 올해보다 낮췄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적자예산이될
공산이 짙다. 세입규모가 세출을 따라갈수 있을지 의문인 탓이다. 세수추계
당국인 재무부가 아직 내년 세수전망을 내놓지 못하는 것도 세수가 크게
부족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기회복이 늦어지는 데다 금융실명제의 전격실시로 내년 경기도
장담할수 없는 상황이 되고보니 세금이 제대로 걷힐 턱이 없는 것이다.
재무부는 기획원이 당초 내년 예산을 14-15% 늘린다고 밝히자 펄쩍 뛰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껏해야 올해보다 10%안팎 증가할 것
이라는게 재무부의 잠정 추계이다.
올해 세수도 당초 계획보다 최소한 1조원가량 줄어들 전망이어서 내년
예산을 43조원선으로 확정할 경우 국민들의 부담은 사실상 18-19%나
늘어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사실상의 적자예산을 짤수밖에 없는 것은 문민정부에 대한
국민들의기대가 그만큼 큰 탓이다. 한마디로 세금은 적게 내되 해달라는
일은 많은 것이다.
우선 금융실명제의 실시로 세원이 많이 노출되더라고 이것이 곧바로
세수증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법인세 상속세 증여세 등의
세율을 낮추기로 이미 방침을 정해놓고 있어 마냥 세수증가를 낙관할수
없다는 얘기다.
세출면은 어떤가. 경부고속전철 사업비 등으로 사회간접자본투자는 올해
보다 25%나 늘어난 6조원선에 달해 여유재원이 크게 모자라는 상황이다.
그런가하면 공무원 봉급이나 방위비를 예년처럼 깍을 수도 없다는게 예산
담당자들의 고민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26일 이부총리로부터 내년예산안을
보고받고 "금년에 고통분담에 앞장선 공무원들에 대해 반드시 보상해야
한다."고지시한 데서도 이런 사정을 읽을수 있다.
방위비도 마찬가지다. 김대통령이 이날 "전력증강에 필수적인 사병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힘쓰라"고 강조한 점을 보아도 방위비위 대폭 삭감은
어려운 일이다.
기획원은 이에따라 올해 동결했던 공무원 봉급을 내년엔 7-9%정도 인상할
방침이다. 방위비 증가율도 한자리수로 유지한다는 게 기본방향이다.
정부와 민자당은 내년 예산편성의 최대난제인 재원확보를 위해 지하철등
공공요금의 수익자부담을 확대하고 각종 기금을 통폐합하는등 재정개혁을
추진중이다. 각부처와 이익집단의 이해가 걸려있는 재정개혁을 놓고
한바탕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영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