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시골청년 윌버 라이트는 25세되던 해에 네살아래인 동생
올리버와 함께 자전거 소매업을 시작했다(1892). 이들형제는 주택가
입구의 한 자전거점포의 주인이 되어 꽤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가지않아 형제의 자전거사업은 기울기 시작했다. 자동차라는 "거인"이
등장한 것이다.

도시의 대로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신발명품 자동차가 이때까지의
수송수단이던 마차를 완전히 밀어내 버렸다. 자동차의 힘에 자전거도
무릎을 꿇어야 했다.

형제는 전직을 생각할수 밖에 없었다. 당시 흐름으로는 자동차관계의
일에 매달리는게 순리였다. 그런데 형 윌버는 난데 없이 비행기를 만들어
보자고 제의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체득한 부력의 이치를
살려보자는 뱃심이었다.

대형 연을 만드는것부터 시작했다. 공기역학의 이치를 꼼꼼히
기록, 연구해 나갔다. 기능의 폭이 점점 넓어지면서 복엽글라이더가
만들어졌고(1902)여기에 다시 엔진과 프로펠러가 부착되었다. 아슬아슬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형제의 기술욕심은 좌절하지 않았다. 하늘을 날으는
물체가 사상 처음으로 사람을 싣고 노스 캐롤라이나의 창공을
날았다(1903). 기능공 라이트 형제가 일구어낸 승리였다.

세계최대의 가전제품 메이커를 만들어낸 마스시타(송하행지조)역시
20대초기에 전등의 쌍소켓을 고안해 냄으로써 창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전기기구 판매가게의 점원으로 일생을 마칠뻔했던 소년 송하의
기능공정신이 세계최대급의 기업을 만들어 낸 것이다.

미국의 라이트형제와 일본의 송하소년을 세계의 인물로 만들어낸
장인기질을 국제무대에서 겨루어 보자는게 곧 국제기능올림픽이다.
지난2일 대만에서 끝난 제32회 기능올림픽에서 우리선수들이 10연패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2위에 그쳤다해서 실망이 큰모양이다. 세계의
25개국이 겨룬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것도 대단한 위업임에 틀림없다.
이번에 1위를 놓쳤다고 해서 지난72년이래 연속 1위를 독점한
"기술한국"의 아성이 쉽게 무너질 일은 없으리라 믿어진다.

메달의 수보다도 이들 기능인이 연마한 기능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회,라이트형제와 송하의 꿈이 활짝 펼쳐지는 그런 사회가 먼저돼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