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칙서에 담긴 세가지 요구조건이 막부로서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수
없었으나,열일곱살인 쇼군은 모든 논의와 결정을 중신들에게 일임했다.

중신들은 논의를 거듭한 끝에 받아들일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정면으로 거절의 의사를 곧바로 황실에 전달할게
아니라,중대한 사안이니 좀더 두고 협의를 계속해 보겠다는 식으로 확답을
뒤로 미루는,다시 말하면 일단 유보의 형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시간을 끌며 황실쪽의 반응과 여러번의 동향을 살피면서 대책을 강구해
나가기로 한 것이었다.

이이나오스케가 살아있었다면 대번에 정면으로 거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철권통치가 계속되고 있는 세상 이었다면 감히 히사미쓰가 군사를
거느리고 출번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황실에서도 그런 칙서를보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이나오스케가 죽은지 어느덧 햇수로 삼년, 힘의
지렛대는 서서히 황실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막부는 그 위력을
견지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조금씩 약체정권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며칠뒤 칙사인 오하라를 에도성으로 붙러들여 중로인 와키사카가 쇼군을
대신하여 그뜻을 전했다. 오하라는 실망을 했으나,자기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물러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오하라로부터 일단 유보라는 결과를 얘기들은 히사미쓰는 분통이 터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이 마치 오하라의 잘못 때문이기라도 한듯 그만
부지중에 그에게 내뱉었다.

"도대체 뭘 했소? 그말을 듣고 그냥 고분고분 물러나왔단 말이오?"
"고분고분 물러나오지는 않았지요. 따지고 들었으나,도리가 없더라구요.
자기 혼자서 결정한 일이 아니니,자꾸 그래봐야 소용이 없다는데
어쩌겠어요" "와키사카 그놈 괘씸한 놈이오. 아마 그놈이 앞장서서 그런
결론을 유도했을게 틀림없소" "그런 것 같애요. 강경파의 두목이지
뭐예요" "내가 그놈을 가만히 놔두지 않겠소. 며칠전에 나한테 뭐라
그러느냐 하면 글쎄,그놈이 내가 군사를 많이 거느리고 왔다고 트집을
잡으려 들지 뭐요" "나도 들었어요. 접견실 밖에 나와서."
"야,이놈아,너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왔다.
어쩔래? 이렇게 내뱉어줄걸 그랬지 뭐요" "허허허."
오하라는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