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봄이었다. 25명의 낯모르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선뜻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해 여름이 지나가면서 모여든 각자의 이유에
대해 열심히 알려고 했고 모두다 스무살이 채 안되는 나이에 서로 다른
방식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과 모습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들은 알려고
하면 할수록,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매우 이질적인 삶의 방식과 개성을
발견해내고 확인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만남을 포기하거나
거부하지도 않았다. 이 만남의 이야기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입학동기생들의 만남의 미학이다. 매우 다른 삶의 방식을 서로가 간직하고
있고 서로가 그것을 소중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말쑥한 은행원이 된 김영철, 연극판을 떠돌다 이벤트 일을 하는 서현석,
여러 장돌뱅이를 거쳐 이젠 제법 무역회사를 차리고있는 김국중, 잡지일을
전전하다 KBS사업단에서 일하는 박찬훈, 독일유학을 마치고 강단을 기웃거리
는 철학박사 최양석, 청년사회활동을 열정적으로 하다가 요즘은 소식이
끊긴 김철기, 목사가 되어 목회활동에 나선 정태원,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북경대학으로 또다시 공부를 떠난 김진근, 보험회사에 다니는 홍순창
강창규, 식솔을 이끌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현지 생활고에 눌려 학문의
길과 생존의 길에서 고민하는 김철호, 결혼후 미국가서 사는 홍일점
공영희, 잘 다니던 직장을 팽개치고 수년전부터 한국사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는 전원섭, 뒤늦게 공무원이 된 유방종, 코오롱그룹 기조실에서
입사이래 같은 업무만 12년째 유일하게 한우물만 파고있는 이호증,
신문기자 장사국, 증권회사원 허정욱, 대한항공 파리주재원으로 가있는
박봉수, 신학공부 하러 미국으로 건너간 이상성, 일찍이 속세를 떠나
출가한 주익성, 어느날 갑자기 행방불명된 최진억, 소식이 끊긴 권기영
장재욱 김후영, 광고대행사 에서 일하다 프리랜서를 해보겠다고 나선 필자.

이렇듯 살아가는 모양새들이 제각각인 우리는 우리들 속에서 세상을
발견하고 확인하고 자위하고 살아간다. 만나는 주기도 없고 만나기로
정해진 날짜도 없고 만남을 나서서 주선하는 이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만난다. 살아있기 때문에 만나는 것이다. 모두가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이 서로 좋아 즐거운 것이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