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우기(우기)가 끝난듯 오래간만에 청명한 하늘이 열리고,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내렸다. 아열대(아열대) 지방 특유의 큼직큼직한 수목들도
신선한 햇살을 받아 한결 싱싱하고 푸르러 보였다.

사이고는 그제야 좀 살것 같은 기분이어서 크게 활개를 펴며 집 밖으로
나가보았다. 슬슬 바람을 쐬며 걸음을 옮기던 그는 자기의
유배지(유배지)가 된 이 다쓰고라는 부락이 어떤 곳인지 좀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을길을 이리 꼬불 저리 꼬불
샅샅이 밟아나갔다.

마을에서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서였다. 사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말뚝이었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큰 말뚝인데,굵기가 보통 집의 기둥만
했다. 그런 둥근 말뚝을 한 개 삐쭉하게 길가에 박아놓질 않았는가.

그곳은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거리였다. 그리고 마을과 선착장의
중간 지점이어서 어쩌면 가장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자리라고 할수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세워놓은 말뚝일까. 사이고는 멀뚱히 서서 그
우뚝한 말뚝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소나 말,혹은 염소같은 가축을
매어두는 말뚝 같지가 않았다. 그런 말뚝이라면 하필 왜 사람의 왕래가
잦은 길가에 세워 놓았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일부러 말뚝을 세우지
않아도 가축을 매어둘 나무는 마을 주변에 얼마든지 있었다.

저쪽 사탕수수밭으로 가는 들길을 젊은 아낙네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게
보였다.

"여봐요- "
사이고는 아낙네들을 불렀다.

두 아낙네는 약간 놀란듯,두려움이 깃든 그런 얼굴로 사이고를
바라보았다.

"이 말뚝 이거 뭐하는 건가요?"
아낙네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뭐하는 말뚝이죠?"
그러자 두 아낙네는 서로 마주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좀 머쓱해진 사이고는, "내 말이 안 들리나요?" 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한 아낙네가 입을 열었다.

"별을 보는 말뚝이라오" "뭐,별을 보는 말뚝?" "예,히히히. "
그러자 다른 아낙네가, "당신도 한번 별을 보시려오?" 하고는 까르르
호들갑스럽게 웃으며 마치 도망이라도 치듯 사탕수수밭 쪽으로 내달았다.
다른 아낙네도 역시 큰소리로 웃어대며 뒤를 쫓듯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