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야 영수회담"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영수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문자 그대로 "옷깃과 소매"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지만
그 바로 뒤에 "남의 위에 서서 모범이 될만한 사람"의 의미로 전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사람중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해방후 우리 신문의 정치면에는 "양영수"라는 기사가 가끔 게재되었다.
이때의 "두영수"란 민족진영의 지도자 우남 이승만박사와 상해임정의 주석
백범김구선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 현대정치사에 있어서 "여야 영수회담"이란 말은 당시의 정치상황을
짐작할수 있는 일종의 지표가 된다. 여야 영수회담은 당시의 시국현안에
대해서 여야가 극한적으로 대립되었을 때 파국을 막고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실현되었던 것이다. 물론 여야 영수회담의 결과 여야 영수가 정치적
결단을 내려 서로 양보.타협해서 시국을 수습한 경우도 있었고 절충에
실패해서 파국으로 치달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여야 영수회담에서 여야 영수가 시국을 수습했을 경우 그때마다
거의 향기롭지 못한 소문이 정가에 나돌았었다. 소위 정치자금수수설이
그것이다. 특히 야당 영수가 대국적 입장에서 야당측의 종래 주장을
양보했을 경우에는 그같은 소문이 정가에 무성했었다. 소문의 출처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정부 여당의 야당분열 내지 교란정치의 일환이라고도
볼수 있었고 야당내 비주류의 음해공작이라고 해석할수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정부의 정치행태가 권위주의적으로 변질되어가자 여야
영수라는 용어 자체가 기피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집권당인 여당의
영수는 국가원수이므로 한낱 양당의 대표에 불과한 야당영수와
같은차원에서 만날수 없다는 논리였다. 한마디로 야당의 영수는
국가원수보다 하위그룹에 속한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여야 영수회담을 개최해야 할 긴급한 정치현안은 별로 없는것 같다.
그러나 국정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여야 영수가 만나 국정전반에 걸쳐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눈다는 것은 바람직스런 일이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민주정치의 원리나 공작 음해정치를 청산하고 깨끗한
정치풍토를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여야 영수가 만난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