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로 집약되는 김영삼경제의 핵심과제는 "경제활성화"와 "고통분담".

본격적인 "신경제"건설작업에 앞서 시행된 "1백일계획"이 경제활성화에
초점을 맞춘것은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은 뒤에"개혁"을 하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경제활성화를 최우선과제로 내건 만큼 1백일계획에는 짧은 기간내에
경기를 끌어올릴수 있는 정책들이 망라되어있다. 금리인하 통화공급확대
경제행정규제완화 예산조기집행등 그간 기업들이 요구했던 조치들이
빠짐없이 포함될 정도였다. 이처럼 강도높은 "부양책"으로도 경기가
살아남지 않는다는건 예전에는 있을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일부에선
물가안정을 해치지않을까하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경제1백일계획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는 요즘의 경제상황을
보면 당초 정부측 예상을 다소 빗나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경기가
나아지는듯 하지만 아직 "확신"을 하기는 어렵다는게 경제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달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50일 중간보고대회에서
이경식경제기획원장관겸 부총리가 "우리경제에 "움직이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나 지표상의 경제활성화효과는 하반기이후에 본격화될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움직이는 경제"로 변화하는 조짐은 우선 수출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 철강등 중화학제품을 중심으로 견실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는것이다. 엔고등 대외적여건의 호전에 힘입은 것이긴하나 5월들어선
수출이 두자리수의 증가율을 보이는등 뚜렷한 개선조짐을 보이고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그나라 "경제의 거울"이라는 주가가 연중 최고기록을 깨는등 상승행진을
보이는 것도 긍정적인 "징조"로 볼수 있다. 특히 사정개혁의 한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뛰는것은 중장기적으론 낙관적인 전망이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일만하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징후들은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기지개를
켜고있는 경제에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하는 투자활동은 여전히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1.4분기중 성장의 견인차라 할수있는
설비투자가 10.1%의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다.

기업들의 투자마인드가 되살아나지 않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게
경제계의 지적이다.

우선 한쪽에선 경제활성화를 위한 각종 조치가 취해지는 반면 다른 쪽에서
진행되는 사정개혁은 당장 기업인들을 얼어붙게 만든 점을 부인할수 없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사정개혁은 "신경제"건설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라고 할수있다. 기업들이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지않고
기업경영에만 전념할수 있는 풍토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부
기업에선 "매출은 줄었지만 오히려 이익은 늘어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과거처럼 손벌리는 곳이 없어져 기업경영이 그만큼 개선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각계에서 "충격적"으로 벌어지는 사정은 기업인들을 움츠리게
만들었던게 사실이다. 김대통령이 최근 잇달아 재계총수들과 만나 "기업에
충격을 주는 강제적인 조치는 없다"고 밝힌것도 정부스스로 이런 사정을
인정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정부의 대기업그룹정책도 기업들을 불안하게 만든 요인으로 지적될만하다.
대기업그룹들이 현실적으로 우리경제의 상당부분을 이끌어가고 있는 마당에
굳이 "과격한" 대기업정책을 내놓아 투자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던게
사실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설비투자가 선도하는 "인플레없는 경제활성화"는 당초
정부의 계획에 다소 미흡하다는게 자체평가인 듯하다.

경기회복은 정치개혁이나 사정처럼 하루아침에 이뤄지는게 아니다.
경제지표가 당장 나아지도록 인위적인 노력을 가하기보다는 먼저 정부의
경제관리능력에 대한 국민과 기업의 신뢰회복이 급선무일것 같다.

경기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고통분담의 논리도 김영삼대통령의
개혁드라이브 구도와 일치한다.

정부부터 씀씀이를 줄일테니 기업은 물건값을 올리지 말고 근로자는
임금인상요구를 자제하며 농민은 쌀값을 올려달라고 조르지 말라는 것이다.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정치의 목표라는 상식을 뒤엎고 국민에게
고통을 나누어지라는 인기없는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제품값 금리 임금등
모든 가격을 억제하지 않고는 경기활성화가 불가능하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신경제1백일계획에서도 고통분담은 경기활성화등 7대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하부구조로 제시됐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김대통령의 개혁이 국민의 지지를 얻자
고통분담도 공감대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17일 경제기획원이
1천5백명의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90.3%가
고통분담정책에 공감하고 있으며 57.1%는 고통분담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취임1백일을 맞이하는 현시점에서 고통분담의 분위기가
다소 이완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사정작업에서 드러난 지도층의 경악할만한 부정부패에 대한 허탈감이
고통분담론에 대한 일부 근로자들의 냉소주의를 부추겼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고통분담이 성공하려면 지도층이 자기살을 더 많이 도려내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 여론조사결과 적극적인 고통분담의 주체가
공직자(38.6%)기업주(24.5%)로 나타난 것도 이같은 민심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영균.안상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