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일산지점장 권오진씨(45)는 바지가랑이에 진흙이 묻어있는 날이
많다. 집이 시골지역에 위치해있어서가 아니다. 그의 집은 흙한번
밟지않고도 살수있는 서울하고도 여의도이다. 그런데도 흙더미와 싸우는게
일인것은 그의 업무때문이다.

권지점장이 은행에 도착하는 시간은 8시에서 8시30분사이이다. 그는
은행에 와서 창구업무가 시작됐는지만 확인한다. 그리곤 곧바로 밖으로
나간다. 밖은 바로 신도시건설 현장.

그러다보니 바지가랑이에 흙이 묻는것은 물론 차가 빠져
밀고들어가야할때가 비일비재하다.

이곳의 아파트건설현장은 약1백여군데에 이른다. 현장이 20여군데에
불과했던 지난해만해도 사흘에 한번은 모든현장에 들를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모든 현장을 한번씩 찾으려면 꼬박 한달은 걸린다. 이곳
근로자들의 성격상 상대도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권씨도
막무가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막걸리도 얻어마시고 고스톱판에
끼여들기도한다.

이렇게 7개월이 지나다보니 60군데의 사무소가 거래처가 됐다고한다.

권씨는 점심후에도 은행에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다. 오후에 그가
찾는곳은 엉뚱하게도 군부대일 경우가 많다. 돈이 돌아가기는 군대도
마찬가지다. 인근부대를 왕으로 모시기로 한 전략이 요즘 한창 결실을
맺어가는 중이다.

권씨가 은행에 돌아와 일일결산을 끝내는 오후7시30분쯤이 그의
퇴근시간이다. 그러나 그가 집에 곧장 오는 날은 거의 없다. 동네
경조사나 이사집에까지 일일이 찾아간다.

이렇게 뛰다보니 일산지점의 수신계수는 부임 8개월만에 약80억원이
늘었다. 이희도전상업은행 명동지점장같은 사람은 몇시간 "뚝딱"하면
끌어올수있는 돈이지만 그야말로 맨바닥에서 거둔 실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그렇지만 권씨도 고민이 없는것은 아니다. "꼭 이렇게 살아야하는
것인지,직장을 잘못택한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업무추진비도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권씨는 "모자라는 돈을 어떻게
벌충하느냐"는 질문에 "안쓴다"고 답한다. 몸으로 때운다는 얘기다.

권지점장이 흙바닥에서 피어난 "꽃"이라면 하나은행여의도지점장
나재수씨(42)는 아스팔트지역에서 소총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이다. 그는
연예인이 아니면서도 "하나로 연예인레포츠단(단장 코미디언이상해)"의
어엿한 정회원이다. 손님한명이라도 확보하려다보니 그렇게 됐단다.

하나은행 여의도지점은 역사는 1년7개월밖에 안된 걸음마 점포이다.
그러나 수신은 2천1백억원을 자랑하는 매머드급이다. "특별한 비결이
있는것은 아니다"(나지점장). 남들보다 더 뛴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란다.
그는 두배를 더 뛴게아니라 "세배"라고 굳이 강조한다.

권씨나 나씨같은 지점장은 우리나라에 4천9백26명(92년말
출장소장포함)이나된다. 전체은행원15만명중 3%에 달하는 셈이다. 물론
모든 지점장들이 다 이들같은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자기은행의
내로라하는 "간판스타들"이다. 커미션을 받아 구속된 지점장도 있고
금융사고로 자살한 사람도있다. 또 대출을 시혜로 여기면서 적당히 즐기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분명한것은 이들이야말로 은행입장에서는 은행을 떠받치는 기둥이고
고객들에겐 은행발전의 정도를 알려주는 바로미터라는 점이다. 고객들은
은행장이 구속되건,임원이 그만두건 상관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다.
은행문턱의 높낮이만을 따지면서"좋은은행" "나쁜은행"을 구분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더라도 지점장의태도가 변하지않는한 소용없는
짓이 되고만다. 군대건 은행이건 일선지휘관은 그래서 책임이 막중하다는
거다.

<하영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