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굴곡을 바로잡아 그 발전적 변화를 꾀하는 민중의 자각과 영웅적
행동을 독특한 구성과 블랙코미디적 어조에 담아낸 소설이 나와 주목을
끌고있다. 신예작가 채영주씨(31)가 최근 내놓은 장편 "시간속의
도적"(열음사간)은 무거운 주제를 희극적인 구성과 가벼운 시각으로
다루고있다.

"시간속의 도적"은 경박함으로 매도되고 있는 신세대작가들의 가벼움이
의미있는 것임을 강조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방법의 가벼움은 시대가 원하는 작법상의 변주일뿐 주제는 여전히
얼마든지 진지할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채씨는 이소설에서 80년대의 광주와 2000년대초의 북한이라는 두
소외지역에 대한 방기가 한국현대사발전에 걸림돌이 될것이란 정치적
비전을 투영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공간을 무대로 한 역사풍자의 새로운
소설유형"(평론가 한기)인 것이다.

소설의 무대는 1998년의 광주이다. 대학을 그만두고 우유배달과
다방DJ일을 하고있는 기준이 주인공이다. 어느날 다방주방장 노장윤씨는
자신이 어떤 미래인을 만났으며 그에게 2047년에 도래할 민족의 파멸을
막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기준에게 말한다.

2047년,컴퓨터의 천재 김재익이란 인물이 나타나 거대한 폭파를
일으킴으로써 지구 자체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려는 계획을 갖고있다는
것이다. 기준은 그 김재익의 어머니가 되는 서해연을 유혹,그의 출생을
막으라는 부탁을 받게됐다.

그러는 가운데 기준은 미래인이 말하는 인류멸망의 위기가 80년의 광주에
잇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방주방장 구두닦이 웨이터 잡역부 다방DJ등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서 일그러진 삶을 살아가는 "다섯난쟁이"들은 역사를
전환시키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무지개작전"에 착수하게 된다. 그들은
전국에 생중계되는 음악회에 기습적으로 나타나 2000년대초 정부가 북한을
위성국가로 전락시키기 위해 꾸민 비밀계획을 폭로하고 북한을 또 다른
광주로 만들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다 모두 체포된다.

채씨는 현재라는 개념이 지금까지는 너무 "좁은 공간""납작한 시간"에
우리를 가두어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래와 과거가 지금의 삶과 연관관계에서 밀접하다면 그것이 바로
현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일제와 광주의 문제가 해소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것은 역사속의 과거가 아니라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현재이지요"
그러한 복합구조하의 시간개념은 같은 유의 공간개념을 파생시킨다. 모든
사건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율에 규제되며 역사의 관객에 불과했던 밑바닥
서민의 진지한 행동 하나도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될수 있다는 새로운
민중관도 생겨난다.

"80년대 민중소설이 정권의 반대자로 설정한 민중개념은 집단으로서의
민중개념이었습니다. 집단과 집단의 싸움은 집단이기주의를 초래하기도
했고 경화만을 가져왔지요"
문학사상 결여된 전통인 "가벼움"이란 것은 이러한 경화를 녹여줄수 있는
윤활유가 될수 있다는 것이 채씨의 생각이다. 그러한 생각에서 합리성의
토대인 "관념의 질서"를 무너뜨려가며 민중에 대한 낙관론적인 견해를 펼친
것이 "시간 속의 도적"이 가진 독특함이다.

62년 부산 태생인 채씨는 81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88년 졸업후
"문학과 사회"에 단편 "노점사내"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순정
순정""가면지우기""새벽2시 파라다이스 카페"등 단편과
"회전목마"연작,장편 "담장과 포도넝쿨"등이 지금까지 내놓은 작품들.

요즘은 이민객인 해외동포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고 여름쯤 탈고를 목표로
LA사태를 소재로한 장편 "아메리칸 버거스"를 준비중이다.

<권영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