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없는 이상사회를 실현하려했던 공산주의체제에도 계급이 없을수
없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유고슬라비아 공산정권의
부통령과 국회의장을 지낸 밀로반 질라스가 일찍이 50년대에 "새로운
계급"이라는 저서를 내놓아 공산주의사회에도 "관료주의자 계층"이라는
신종 계급이 탄생했음을 세계에 널리 알린바 있다. 소련공산체제가 붕괴된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는 노멘크라투라의 부패에서도 그 단면을 엿보게
된다.

최근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미국 햄라인대학 케이건교수의
"북한 인권"이라는 아시아워치 연구보고서를 보면 이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북한에는 세가지 계급이 있다는 그의 보고다.
엘리트계급,유동계급,불온계급이 그것이다. 엘리트계급은 김일성일가를
포함한 당료와 관료들로서 약200만명이나 된다. 그러나 그들도 항상
숙청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계급의 상향과 하향이 가변적인 유동계급은
1,500여만명으로 교육 여행 보건면에서 극히 제한적인 권리와 혜택을 받고
있다. 약300만명의 불온계급은 어떤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
지상의 어느 나라에도 지금은 존재치 않는 노예노동자들인 셈이다.

이들 세 계급은 법률 적용면에서도 다르게 대우를 받는가하면 각기 다른
교육과 식량배급을 받는다. 의료혜택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유형의 죄를 범한 청소년들인데도 계급에 따라 형량이 다르다.
엘리트계급만을 위한 극비의 병원이 설치되어 있다. 유동계급용
병원들에는 고도의 의료기술장비가 갖추어져 있으나 전혀 가동되지 않고
있어 전시용에 그치고 있을 정도로 의료시혜가 열악하다.

평양에는 엘리트계급들만이 살고있다. 그런데도 그곳에는 슬럼지역이
있다. 유동계급이 살고있는 이른바 판자촌이다. 그 지역 주민들은 거리를
청소하거나 눈을 쓸어내는 잡역부들이다. 여러모로 통제된 건물이나
거리의 모습과는 달리 엘리트 주거지역의 어두운 그림자다.

"계급 없는 지상의 낙원"을 외치던 공산주의자들의 꿈이 허구임을 여실히
드러내준 북한의 계급실상이다.

"인생은 오르려하고 높이가 있기때문에 계급이 필요한 것"이라는 니체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계층은 모든 사회의 역사에 필요악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