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 성왕은 오동나무잎을 어린 아우에게 주면서 "이것으로 너를 제후에
봉한다"고 농담을 했다. 숙부로서 성왕의 섭정을 맡고있던 주공은 이
얘기를 듣고 "천자는 농담을 하셔서는 안됩니다"고 말하고 어린 아우를
제후에 봉하게 했다. 령이 서게 하려면,법과 질서가 준수되게 하려면
권부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지난 총선때 정부는 깨끗한 선거,돈안드는 선거,공명선거,관권선거배제등
온갖 지당한 말들을 다 동원하여 선거풍토정화를 공약했다. 시민단체들도
이에 호응하여 공명선거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신문 방송등 매스컴에서도
이번에야 말로 선거비리를 몰아내자고 요란하게 캠페인을 벌였다.
국민들은 한표한표의 주권을 돈을 받고 팔아넘겨서는 안된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한준수 전연기군수의 관권선거폭로 사건은 그것이 액면대로 사실이라면
행정기관의 배신을 입증하고 있다. 정부가 겉으로는 공명선거를
외쳐대면서 배후에선 일선행정기관들이 부정선거를 음모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공명선거에 앞장섰던,이나라를 좀더 깨끗이 가꿔보려던 국민들의
꿈이 짓밟힌 것이다. 한 전군수의 양심선언직후 "그럴리가 없다"고 한
권부의 시치미떼기는 또 무엇인가.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낳는
"거짓말증후군"에 걸려있는 것인가.

물론 수사가 끝나봐야 양심선언의 완전한 진실여부가 판명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국민들은 한씨의 증언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관권선거가 연기군만의 사례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여러 군데서 기도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럴수가 있나"하는
분노와 "그러면 그렇지 별수있나"하는 체념이 뒤범벅이 된 우리의 현실이
암담하기 그지없을 뿐이다. 정부의 말을 믿지 못하고 관권선거 하수인의
말을 믿어야 하는 공권력의 신뢰성실추가 한국을 어디로 몰고갈지 아찔한
느낌마저 든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은 행정뿐만 아니라 정치지도자들의 언행에서도
다반사가 되어있어 총체적으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지 못하는
공권력불신으로 이어진다. 6공초기 준조세를 없애겠다고 큰소리친게
기억에 생생한데 준조세는 줄기는 커녕 늘고만 있다니 어리둥절할수 밖에
없다. 그 이후에도 기회있을때 마다 준조세를 줄인다고 공언했는데 이를
비웃듯 실제로는 준조세가 늘어만 갔다. 정부의 말이 한낱 허튼 소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새해예산을 짤때 마다 "추경예산은 절대로 없다"고 공언하여 일단 예산을
불려놓고는 때가 되면 또 추경을 짜는 식언이 많았다. 중소기업에 돈을
많이 풀겠다고 약속하지만 은행에선 푸대접이다. 행정부에선 말도 안되게
공무원봉급을 동결한다고 해놓고 집권당에서 인심쓰듯 봉급을 올린다.
특정산업을 대폭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돈은 마련되어 있지 않아 공수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선거때의 공약이 공약이 되는 일은 말할것 없다.
지키지 않는 잘못보다도 지킬수 없는 허풍공약을 했기 때문이다. 비가오면
우산을 받쳐주겠다고 해놓고는 아무런 우산도 준비하지 않아
국민들이,기업들이 흠뻑 비에 젖어 몸살을 앓게 되는 거짓말정책이
비일비재인 셈이다.

거짓말은 무책임과 불성실에서 나온다.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을때
거짓말을 한다. 없으면 없다고 해야 한다. 국민보고 참아야 할땐
참으라고 해야 한다. 없는데도 있는것 처럼 준다고 하면 거짓말이 된다.

참아야할때 참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사람망친다. 거짓말은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길이다. 진실을 말해야 개선과 향상이 있다.
거짓말이야말로 등불을 끄는 입김이다. 거기에는 희망이 없다.

등불이 꺼진 힘에는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일관성 없는 정책도 일종의
거짓말이어서 누구도 따르기를 주저한다. 그러면 혼란이 조성되고 국가나
정책은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게 된다. 우리 국민은 누구도 이를 원치
않는데 권부가 스스로 그같은 상태에 빠져든다. 현재의 사회적 혼란이나
경제력약화도 거짓말증후군과 무관하지 않다. 치안본부장을 지낸 사람이
부도를 내고 미국으로 달아나다니 누구를 믿을 것인가.

불평만 늘어놓자는 의도가 아니다. 정부의 잃어버린 신뢰성을 시급히
복원하는 일이 우리의 진운에 결정적 발판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뛰어오를 발판을 잃고 있다. 국가기능의 발판이
그것이다.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발판이다.

정부는 우선 진실을 말할 용기를 회복해야 한다. 연기군 관권선거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여 본원적으로 개선하는 길이 신뢰회복의 첩경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표를 의식한 락관선호증에 빠지지 말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단해야 올바른 처방이 나올 것이다. 거짓의 전제위에선
거짓처방만 있을 뿐이다. "진실만이 구제할수 있다"는 말에는 나라도
예외일수 없다. 정부는 주나라의 성왕처럼 농담을 할수 없는 것이다.
정부뿐 아니라 공공조직이 모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