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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남포조사단 방북계기 경협논의 본격화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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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21일 남포조사단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한간 경협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6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그동안의 핵연계방침에도 불구하고 최근 업계의
    북한주민접촉신청이 34건이나 한꺼번에 승인돼 앞으로 남북간 경제협력사업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주민접촉승인과 관련,정부관계자는 "기존의 핵연계방침이 크게
    완화된 것으로 볼수있다"고 밝혔다.

    특히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과 남포조사단의 방북을 앞두고
    대북접촉승인이 무더기로 나와 업계의 북한진출노력이 더욱 가속화될
    조짐이다.

    정부는 이에따라 업계의 과당경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오는9월말
    한갑수경제기획원차관을 위원장으로 남북경제협력조정위원회를 열고
    대북투자 교역 조정지침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들지침은 남북한간 경협과 관련한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방지협정등
    구체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남북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가
    개최되기 이전에 우리측의 내부지침을 정하는 것으로 대북투자의 규모와
    업종등을 명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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