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토론회서 북한의 종군위안부 증언..청중 흐느낌과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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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을 하기 위해 종군위안부였던 북한 할머니들이 인민문화궁전
에 들어오자 남쪽 윤정옥 대표는 일일이 할머니들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증언을 듣는 동안 장내는 곳곳에서 흐느낌과 한숨이 새어나오고 할머
니들은 감정이 격해져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 손을 휘두르는 등 몸짓
을 해가며 만행을 저지른 일본군들에 대한 치떨리는 분노를 표시했다.
남쪽 참가자들이 비교적 차분한 표정인 데 비해 북쪽 참가자들은 대
부분 눈물을 흘렸다.
◇…첫번째 증언자로 나선 리복녀 할머니는 “소련과 중국의 국경지
대인 아오지로 끌려가 37년부터 45년까지 위안부 생활을 했다”면서 “일
본놈들에게 두들겨 맞고 갖은 흉칙한 짓을 다 당해 일본에서 `잘못했습니
다. 용서하십시오'' 라고 사죄할 때까지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다”고
격분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지금까지 위안부로 끌려간 시기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른 29년부터
33년까지 종군위안부라는 일본군의 성노예로 시달렸다는 리경생 할머니는
“12살 때 종살이하던 집의 주인이 위안부로 팔아넘겼다”면서 “경남 창
원에 있는 일본의 비밀공장에 끌려가 더러운 짓을 당했고, 같이 있던 한
위안부는 반항하다 발가벗기운 채 나무에 두 다리가 매어달리기도 했다”
고 몸서리를 쳤다.
◇…김영실 할머니는 “일본군 장교의 꼬임에 속아 13살 때 끌려가
해방될 때까지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밝히고 “위안부들끼리
모여 앉거나 조선말을 하지 못하도록 강요당했고, 나는 반항하다가 주전
자물을 퍼붓는 물고문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영실 할머니가 “과거의 기억 때문에 우리는 여기 오신 여러분처럼
시집 한번 못가고 혼자 삽니다”라고 말하며 목이 메자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증언을 마친 할머니들은 남쪽 대표단과 껴안고 눈물이 복받쳐 몸
을 가누기 어려워 하는 모습이었다.
남쪽 이우정 대표가 할머니들에게 선물로 내의를 전하면서 “남쪽에
도 여러분 같은 할머니들이 많다.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같은 처지의 분
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사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김대일 할머니는
“그리되면 원이 없겠다”며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에 들어오자 남쪽 윤정옥 대표는 일일이 할머니들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증언을 듣는 동안 장내는 곳곳에서 흐느낌과 한숨이 새어나오고 할머
니들은 감정이 격해져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 손을 휘두르는 등 몸짓
을 해가며 만행을 저지른 일본군들에 대한 치떨리는 분노를 표시했다.
남쪽 참가자들이 비교적 차분한 표정인 데 비해 북쪽 참가자들은 대
부분 눈물을 흘렸다.
◇…첫번째 증언자로 나선 리복녀 할머니는 “소련과 중국의 국경지
대인 아오지로 끌려가 37년부터 45년까지 위안부 생활을 했다”면서 “일
본놈들에게 두들겨 맞고 갖은 흉칙한 짓을 다 당해 일본에서 `잘못했습니
다. 용서하십시오'' 라고 사죄할 때까지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다”고
격분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지금까지 위안부로 끌려간 시기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른 29년부터
33년까지 종군위안부라는 일본군의 성노예로 시달렸다는 리경생 할머니는
“12살 때 종살이하던 집의 주인이 위안부로 팔아넘겼다”면서 “경남 창
원에 있는 일본의 비밀공장에 끌려가 더러운 짓을 당했고, 같이 있던 한
위안부는 반항하다 발가벗기운 채 나무에 두 다리가 매어달리기도 했다”
고 몸서리를 쳤다.
◇…김영실 할머니는 “일본군 장교의 꼬임에 속아 13살 때 끌려가
해방될 때까지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밝히고 “위안부들끼리
모여 앉거나 조선말을 하지 못하도록 강요당했고, 나는 반항하다가 주전
자물을 퍼붓는 물고문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영실 할머니가 “과거의 기억 때문에 우리는 여기 오신 여러분처럼
시집 한번 못가고 혼자 삽니다”라고 말하며 목이 메자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증언을 마친 할머니들은 남쪽 대표단과 껴안고 눈물이 복받쳐 몸
을 가누기 어려워 하는 모습이었다.
남쪽 이우정 대표가 할머니들에게 선물로 내의를 전하면서 “남쪽에
도 여러분 같은 할머니들이 많다.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같은 처지의 분
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사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김대일 할머니는
“그리되면 원이 없겠다”며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