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의 마지막보루를 자처해온 증시안정기금은 지난4일 종합주가지수
500선이 휘청거릴때도 강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만 보고있었다.

결국 지수500의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460마저 깨졌지만 증안기금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남은 돈이 부족해 어쩔수없다"는 것이
기금관계자들의 얘기였다.
지난90년5월 4조원이라는 두둑한 밑천으로 출범한 증시안정기금이 그동안
주식을 사고 여유분으로 쥐고있는 돈은 현재 5천2백억원에 불과하다.

이돈에서 1천억원정도는 유상증자 주식인수 준비금으로 보관해야한다. 이
준비금을 빼면 주식시장에 투입할수 있는 자금은 4천억원수준으로
줄어든다. 적게잡아 하루 1백억원어치의 주식을 산다고해도 40일이면 손을
털어야한다.

이처럼 남은 자금이 달랑거리다보니 쉽게 주식시장에 발을 들여놓을수
없다. 나머지를 다 쓸어넣어 자금이 진짜 바닥날경우 주식시장의
투자심리가 걷잡을수 없이 얼어붙는 위기상황을 자초할수 있기때문이다.

주식매입이 한계에 부딪쳐 앉은뱅이 신세가 된 증시안정기금에도
"8.24"증시종합대책에 따라 긴급수혈이 이뤄지게 됐다.

재무부는 일반기업과 증권업계로부터 5천억원이 증시안정기금에
공급되도록 만들겠다고 발표하고 실무작업을 진행중이다.

향후 1년간 한시적으로 기업이 증시에서 주식공개모집이나 유상증자등의
형태로 자금을 조달할때 업종에따라 조달자금의 10% 또는 15%를
증시안정기금 몫으로 떼내 3천6백억원을 조성하고 나머지 1천4백억원은
작년에 문을연 6개 신설증권사가 공동 부담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증권전문가들은 재무부가 발표한 기금증액분 5천억원이 다소
"뻥튀기"가 된 금액으로 보고있다.

기업들로부터 3천6백억원을 뽑아내려면 재무부가 설정한 부담비율로
역산해볼때 앞으로 1년동안 3조2천억원규모의 주식공모및 유상증자가
이뤄져야 한다.

지난90년의 주식공모및 증자실적은 2조9천억원이었고 91년엔
2조4천억원으로 줄었다. 금년엔 2조원미만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주식공모및 유상증자는 증시에 결정적인 물량압박을 주는 요인이다.
증권당국도 주식시장이 완전 회복될때까지 공모나 증자를 가능한한 억제해
증시의 물량압박을 경감시키는 쪽으로 행정지도를 펴고있다.

증권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의 기업자금조달여건이 작년때처럼만 복구된다고
해도 다행스럽겠다는 진단을 내리고있다. 이 경우 증시안정기금의 몫은
2천7백억원이다.

요행을 바라고 자금조달여건이 지난90년수준으로 복구한다는 꿈을 꾼다고
해도 증시안정기금 몫으로 3천2백억원이 돌아간다. 재무부가 제시한
"3천6백억원"목표에 미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신설증권사들이 부담할 1천4백억원은 액면 그대로 증시안정기금 주머니에
들어갈수 있지만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증권회사 돈이 증시안정기금쪽으로 들어가는 것은 같은 기관투자가들간의
자금이동에 불과하다. 주식시장 전체로 볼때 매수기반이 확충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증안기금출자금을 마련키위해 채권이나 주식을 팔거나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담보로 빌려주는 영업자금을 축소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
1천4백억원을 내야하는 신설증권사들의 입장이다. 기금출자액 만큼
증권회사를 통한 매수여력이 감퇴되는 "제닭잡아먹기"식이 되기 쉽상이다.

여기에 증시안정기금의 시장개입 효과도 최근 1년여사이에 눈에띄게
퇴색됐다.

증시안정기금은 지난90년 출범초기엔 전 업종에 걸쳐 무차별적인
주식매입을 하면서 말 그대로 시장의 "안전판"역할을 그런대로 해냈다.
작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시장개입일수가 90년중의 1백41일에서
25일로 축소됐다. 그나마 주가가 크게 떨어지는 대형주위주로 매수종목을
선택하며 급한 불을 꺼보자는 임시방편식의 시장개입에 급급한 실정이됐다.
기금의 자금여력이 1조원미만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말기적인
현상이다.

투신사같은 기관투자가들은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은 종목만을
선택한다. 그러나 비영리기관인 증시안정기금은 설립취지에따라 취약한
종목을 손댈수 밖에 없다. 투신사가 사들이는 종목은 뒤쫓아 매입할
가치가 있지만 증시안정기금이 손대는 종목은 되도록 기피하는게
상책이라는 것이 증권회사 일선영업직원들의 상식이 돼버렸다.

다시말해 증안기금과 다른 기관투자가들이 똑같은 액수의 돈으로 주식을
사들인다해도 증시부양에 미치는 효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재무부의 5천억원공급안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증권전문가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8.24"부양책의 가지수를 늘리는 들러리
정도밖에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양홍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