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사설(3일자)> 정치권이 올바라야 현난관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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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지금 고장난 기계처럼 삐걱거린다. 요란하게 떠들던
정보사땅사기사건이 이제는 바르셀로나올림픽에 파묻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종적을 감췄지만 그같은 사건이 잇따라 퉁퉁 터지는 것이
우리사회 고장의 증좌다. 남해에서 준공된지 10여년밖에 안되는 큰 다리의
교각이 위험예고가 외면된 끝에 무너져 건너던 행인이 추락사한 것도
사회고장의 명백한 증거다. 새 국회가 첫 임시국회를 원구성조차 못하고
몇달씩 허송세월을 하는것은 또 얼마나 큰 고장인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세비는 꼬박꼬박 받으면서 국정은 한건도 처리하지
못하고 빈둥댔으니 선량들의 마음이 고장난 꼴이다. 그러면서
근로자에게는 무노동무임금을 외쳐대는것 자체가 동력장치의 고장을 놔둔채
기계가 돌아가기를 바라는 무모함이다. 대통령의 지시가 일선행정기관에서
그대로 이행되지 않는것도 국가의 고장상태와 다름없다.
우리의 전통사회를 의리와 인정이 넘치는 사회라고 곧잘 표현한다.
불가에서 길거리에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듯 각종의 연고가 또한
판을 친다. 한마디로 우리는 전통적 정리의 사회에 머물러 있다.
인연있는 사람끼리 폐 적으로 자급하며 살수 있었던 농경사회의 유습으로
산업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고장의 핵심원인이 있다.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합리적 산업사회를 인연있는 사람끼리
호미와 쟁기질을 하던 농경사회 방식으로 살아가려는데서 문제가 속출한다.
의리라는 말 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다. 사전의 정의를 보면 1사람으로서
지킬 바른 도리 2신의를 지켜야할 교제상의 도리 3남남끼리 혈족과 같은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예기인가.
인정에 이르러서는 그 따스한 사회적 온도를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이같은 정리가 농경사회적인 인연의 틀속에서 이루어지는데 문제가
있다.
얼마전 어느 신문에선 정부투자기관의 이사장자리가 "아는 사람끼리
나누어 먹는 떡이냐"고 신랄히 비판했다. 최근의 고위급 인사에서
국민들은 의리에 이끌린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고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인사권자는 요지부동이다. 기회가 합리적으로 공개되고
균등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고장나는 것이다.
정리사회에선 인연있는 사람에게 기회나 이권을 주지 않으면 그 당사자는
의리없는 자라고 매도당한다. 자연히 무엇이든 끼리끼리 나누게 된다.
부조리의 온상이 생긴다. 인사도,인허가도,납품도,융자도,투표도 각종
인연에 의해 좌우된다. 인연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살기위해 돈을
싸들고 다녀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인연과 의리를 만든다. 총체적
부패구조가 이뤄지는 셈이다. 산업사회의 합리성이 파괴되고 만다.
정치행태만 봐도 파당이란 것이 무슨 철학이나 뚜렷한 로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같이 하는 인물들이 모여 큰자리를 나눠가지려는 집단일
뿐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어떤 파당이건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하는데,정작
그들은 국민을 외쳐대며 자기들 실속차리기에 여념이 없다. 불실공사
사기사건 이권거래등도 모두 정리와 인맥을 둘러싼 춘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술개발보다는 정리와 인연에 호소하는 길이 더 손쉽게 돈을
벌수 있는 구조다.
요새 동네북 처럼 끄떡하면 욕먹는 것이 기업들이다. 정부도 이에
편승하여 기업을 규제만 하려 하고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정리와
뒷거래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완전히 결백한 기업이 있었다면 지금 살아남아
있지를 못했을 것이다. 흙탕물속에서 물고기가 살아있으려면 흙탕물이라도
마실수 밖에 없는듯한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사회현실이다. 기업의
자정노력과 함께 정리의 고리를 잘라내는 일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속된 말로 돈놓고 돈먹는 순수 민간끼리의 비즈니스에선 의리나 인정
인연이 통하기 어렵다. 원가개념이 적은 권력,정부가 쥐고 있는 이권에서
정리에 흐르기 쉽고 이것이 하방으로 확산된다. 국민의식이 근본문제이긴
하지만 윗물이 맑아야 하는 것이 실효상 문제해결의 첩경이라고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미국의 맨슈어 올슨교수는 국가의 흥망은 자본 노동 투자 저축등의 경제적
변수보다는 역사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농경사회적 의리보다는 산업시대의 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하루속히 넘어가야 한다. 고장난 사회구조는 그래야 고쳐진다.
정보사땅사기사건이 이제는 바르셀로나올림픽에 파묻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종적을 감췄지만 그같은 사건이 잇따라 퉁퉁 터지는 것이
우리사회 고장의 증좌다. 남해에서 준공된지 10여년밖에 안되는 큰 다리의
교각이 위험예고가 외면된 끝에 무너져 건너던 행인이 추락사한 것도
사회고장의 명백한 증거다. 새 국회가 첫 임시국회를 원구성조차 못하고
몇달씩 허송세월을 하는것은 또 얼마나 큰 고장인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세비는 꼬박꼬박 받으면서 국정은 한건도 처리하지
못하고 빈둥댔으니 선량들의 마음이 고장난 꼴이다. 그러면서
근로자에게는 무노동무임금을 외쳐대는것 자체가 동력장치의 고장을 놔둔채
기계가 돌아가기를 바라는 무모함이다. 대통령의 지시가 일선행정기관에서
그대로 이행되지 않는것도 국가의 고장상태와 다름없다.
우리의 전통사회를 의리와 인정이 넘치는 사회라고 곧잘 표현한다.
불가에서 길거리에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듯 각종의 연고가 또한
판을 친다. 한마디로 우리는 전통적 정리의 사회에 머물러 있다.
인연있는 사람끼리 폐 적으로 자급하며 살수 있었던 농경사회의 유습으로
산업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고장의 핵심원인이 있다.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합리적 산업사회를 인연있는 사람끼리
호미와 쟁기질을 하던 농경사회 방식으로 살아가려는데서 문제가 속출한다.
의리라는 말 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다. 사전의 정의를 보면 1사람으로서
지킬 바른 도리 2신의를 지켜야할 교제상의 도리 3남남끼리 혈족과 같은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예기인가.
인정에 이르러서는 그 따스한 사회적 온도를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이같은 정리가 농경사회적인 인연의 틀속에서 이루어지는데 문제가
있다.
얼마전 어느 신문에선 정부투자기관의 이사장자리가 "아는 사람끼리
나누어 먹는 떡이냐"고 신랄히 비판했다. 최근의 고위급 인사에서
국민들은 의리에 이끌린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고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인사권자는 요지부동이다. 기회가 합리적으로 공개되고
균등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고장나는 것이다.
정리사회에선 인연있는 사람에게 기회나 이권을 주지 않으면 그 당사자는
의리없는 자라고 매도당한다. 자연히 무엇이든 끼리끼리 나누게 된다.
부조리의 온상이 생긴다. 인사도,인허가도,납품도,융자도,투표도 각종
인연에 의해 좌우된다. 인연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살기위해 돈을
싸들고 다녀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인연과 의리를 만든다. 총체적
부패구조가 이뤄지는 셈이다. 산업사회의 합리성이 파괴되고 만다.
정치행태만 봐도 파당이란 것이 무슨 철학이나 뚜렷한 로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같이 하는 인물들이 모여 큰자리를 나눠가지려는 집단일
뿐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어떤 파당이건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하는데,정작
그들은 국민을 외쳐대며 자기들 실속차리기에 여념이 없다. 불실공사
사기사건 이권거래등도 모두 정리와 인맥을 둘러싼 춘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술개발보다는 정리와 인연에 호소하는 길이 더 손쉽게 돈을
벌수 있는 구조다.
요새 동네북 처럼 끄떡하면 욕먹는 것이 기업들이다. 정부도 이에
편승하여 기업을 규제만 하려 하고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정리와
뒷거래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완전히 결백한 기업이 있었다면 지금 살아남아
있지를 못했을 것이다. 흙탕물속에서 물고기가 살아있으려면 흙탕물이라도
마실수 밖에 없는듯한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사회현실이다. 기업의
자정노력과 함께 정리의 고리를 잘라내는 일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속된 말로 돈놓고 돈먹는 순수 민간끼리의 비즈니스에선 의리나 인정
인연이 통하기 어렵다. 원가개념이 적은 권력,정부가 쥐고 있는 이권에서
정리에 흐르기 쉽고 이것이 하방으로 확산된다. 국민의식이 근본문제이긴
하지만 윗물이 맑아야 하는 것이 실효상 문제해결의 첩경이라고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미국의 맨슈어 올슨교수는 국가의 흥망은 자본 노동 투자 저축등의 경제적
변수보다는 역사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농경사회적 의리보다는 산업시대의 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하루속히 넘어가야 한다. 고장난 사회구조는 그래야 고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