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1인당GNP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하고 몇몇 경제전문가들에게
물어보았다. 거의가 5백달러 수준일것이라는 대답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요즘 경제개발도 활발한 중국이 그정도 수준이며 중국보다
못사는 나라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5백달러정도가 세계1인당GNP가
될것이라는 짐작이 보통이다.
한국의 1인당 GNP는 6천달러수준이다. 세계1인당GNP가 5백달러라면
우리는 세계평균보다 12배나 잘 살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환상이다. 아무리 착각에 속도위반은 없다고
하지만 이야말로 큰일날 착각인 것이다. 세계1인당GNP는 4천달러가
넘는다. 한국은 세계평균보다 조금 높아진 처지에서 굉장한 부자가 된양
우쭐댄 것이다.
91년 미국의 GNP는 5조6천억달러이다. 미국이 세계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몫은 1950년의 33%에서 88년엔 26%로 줄어들었다. 정확한 통계는 구하기
어렵지만 현재는 25%라고 보고있다. 따라서 부정확하지만 미국GNP의 4배인
22조4천억달러가 세계총생산이 되는 셈이다. 이를 91년세계인구 53억으로
나누면 세계1인당GNP는 4천2백달러가 된다.
한국의 1인당GNP는 이제 겨우 세계평균을 조금 넘었는데 국민들의 정서는
88올림픽때 세계4위를 한 잔치기분에 들떠있다. 선진국이라는 항구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가야할 물길이 더 먼데 도중에 연료를 다 써버려
표류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이다. 젊은이들은 궂은 일을 싫어하여
놀고먹는 실업자가 늘어나고 막일을 시키기위해 외국노동자를 수입하자고
야단이다. 떼지어 다니는 한국의 해외여행자들은 졸부처럼 외국상점의
사치품들을 싹쓸이 한다.
정부는 선진국들도 몸을 사리고 있는판에 구소련에 대해 30억달러 지원을
선심쓰듯 약속하고 그중의 상당부분을 이미 집행했다. 1인당GNP 2만달러가
넘는 일본어부들이 잡은 생선을 1인당GNP 6천달러의 한국인들이 수입하여
회를 즐기는 기막힌 현실이다. 정부 국민모두가 죽이 잘 맞게
세계평균보다 12배 잘살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는지 모른다.
이러는 사이에 환상의 꿈이 깨진게 아니라 흑자국의 꿈이 깨졌으며 한국은
다시 10대채무국에 랭크되었다.
빚을 내서 성대한 파티를 치른 꼴이다. 우리의 발전을 보고 "한국에서
배우자"고 하던 동남아국가들은 이제 한국에서 배울것은 "한국의 전철을
밟지말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배고픔의 공포를 경험한 세대들이 허리띠
졸라매고 피땀으로 그나마 이룩한 한국의 위상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서
된단 말인가.
정부는 국민들에게 땀을 요구해야 할때에 복지배급만을 약속하여 오히려
복지수준의 저하를 초래할 소지는 없는가. 경제정책이 목표를 향해
현실수용을 하기보다는 너무 높은 목표를 설정해놓고 현실을 이탈하기
때문에 경제능력의 하강을 초래한것은 아닌가. 정부자신이 고무풍선같은
부국환상에 빠져 그것이 정책기조를 이루지 않았나 되돌아봐야 한다.
산업구조고도화만 해도 첨단부문에만 치우쳐 전통산업을 하나하나
후발국에 내주는 것을 구조조정이라고 생각하면 위험하다. 경쟁력 상실
부문의 증가를 막을수 있게끔 여하히 품질고급화등 변혁을 이룰것인가에
구조조정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국내 소비자들은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의 고급의복에 몰려들면서 1인당GNP 6천달러의 한국이 "섬유는
사양산업이니까 도산사태가 나도 구조조정의 과정"이라고 인식하면 크게
잘못짚는 것이다.
부자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우리자신의 분수를 똑바로 알아야 한다.
년초에 일더하기운동이 번지는가 싶더니 정치과열이 그것을 삼켜버렸다.
지금은 정치더하기 운동이 한창이다. 왜 이다지도 끈기가 없는가.
대권주자들은 또한 절제와 규율과 근로라는 고달픈 선택보다는 잔치를
약속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호의 표류를 구할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그런 지도자는 국민에게 선박의 연료역할을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한국인이 다시 불타야만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수 있다.
냉전이라는 한 시대가 끝나고 지금은 경제전쟁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이런 전환기엔 잔치보다는 일을 준비하는 자가 승자가
된다. 세계평균을 약간 넘는 1인당GNP를 가진 한국이 선진부국처럼
착각하여 소모해온 정력이 너무 컸다. 개발연대를 이끌어온 헝그리정신과
맞먹는 새로운 국민적 에너지가 긴박히 요구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