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23.코오롱)가 제41회 벳부 오이타 국제마라톤에서 기록한 2 시간
08분47초는 한국마라톤이 공식기록되기 시작한 지난 1927년 이후 65년만에
1시간20분50초를 단축한 것이다.
최초의 한국기록은 27년 제1회 조선육상선수권대회에서 마봉옥이 세운
3시간29분37초로 당시에는 종로와 충무로 등 서울시내에서 인파와 가마들을
헤치고 세워진 것이다.
이후 마봉옥은 2회대회에서 2시간57분34초로 3시간벽을 처음 깨뜨렸고
31년에는 김은배가 31년 조선신궁대회(현재의 전국체전과 비슷한
종합대회)에서 2시간30분벽( 2시간26분12초)을 넘어섰다.
그해에는 동아마라톤대회가 창설돼 마라톤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김은
이듬해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6위에 입상했다.
여기에 자극받았던 당시 양정고생 손기정은 35년 2시간25분14초로
한국기록을 경신한 뒤 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하 는 쾌거를 이룩했다.
한국마라톤은 해방이후 47년의 보스톤마라톤에서 서윤복이 우승하며 그
전통을 이어갔고 50년에는 동 대회에서 함기용, 유장춘, 최윤칠이 1,2,3위
를 휩쓸며 마라톤 강국의 면모를 만방에 과시했다.
그러나 6.25동란을 계기로 선수육성을 등한히한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뒤처지기 시작했고 72년 뮌헨올림픽부터는 기준기록 미달로 참가조차 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 기도 했다.
20분벽은 지난 66년 김복래가 제37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19분
07초로 우승하면서 깨졌으나 한국마라톤은 세계기록과는 10분가량의 일정한
격차를 유지하며 마라톤 후진국을 면치못했고 74년 문흥주가 세운 2시간16분
15초의 한국기록은 84년 이 홍렬(2시간14분59초)이 경신할 때까지 10년동안
단축될 줄 몰랐다.
그러나 원로육상인들은 80년대초부터 마라톤 부흥을 외치며 선수들을
격려하고 코오롱그룹에서 막대한 상금(9분벽돌파 1억원)을 내걸면서 점차
상승세를 타기 시작 결국 황의 쾌거까지 이른 것이다.
특히 90년 김완기(코오롱)가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11분34초로
한국기록을 세운 이후 김완기, 황영조, 이창우(이상 코오롱),
김원탁(일반), 김재룡(한전) 등이 치열 한 경쟁을 벌이며 기록경신에
몰두했고 지난해 11월에는 조선일보 마라톤에서 김완 기가 또다시
2시간11분02초로 기록을 단축했었다.
역대 한국기록변천사
<>3시간29분37초 1927년 마봉옥
<>2시간57분34초 1928년 마봉옥
<>2시간36분50초 1930년 이성근
<>2시간26분12초 1931년 김은배
<>2시간25분14초 1935년 손기정
<>2시간24분55초 1957년 임종우
<>2시간24분07초 1959년 이창훈
<>2시간23분56초 1962년 김연범
<>2시간21분54초 1963년 이상훈
<>2시간21분25초 1964년 이상훈
<>2시간20분19초 1965년 김복래
<>2시간19분07초 1966년 김복래
<>2시간18분18초 1969년 박봉근
<>2시간17분34초 1970년 김차환
<>2시간17분01초 1973년 김차환
<>2시간16분26초 1974년 조재형
<>2시간16분15초 1974년 문흥주
<>2시간14분59초 1984년 이홍렬
<>2시간14분06초 1986년 유재성
<>2시간12분21초 1987년 이종희
<>2시간11분34초 1990년 김완기
<>2시간11분02초 1991년 김완기
<>2시간08분47초 1992년 황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