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경제의 성적표를 굳이 따지자면 낙제점에 속한다.
물가는 10년래 최고,국제수지적자는 사상최대라는 참담한 기록을 남겼다.
성장도 당초 목표 7%대를 훨씬 넘어선 8.6%의 고율을 기록했다. 고성장이
이뤄지긴 했으나 고물가와 국제수지적자로 얼룩진 전형적인 "부실성장"의
실상을 드러냈다. 소비가 주도한 거품경제의 허상을 현실로 입증시킨
셈이다.
올해 물가와 국제수지적자는 그 폭이 예상외로 컸다는 점보다 우리경제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됐다는 병인때문에 더 충격을 준다. 물가는 더이상
물가정책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상황이 됐고 국제수지적자도 경제전반의
체질전환이 따르지 않는한 만성화될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는
점이다.
연초부터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총력전을 벌였으나 올해
소비자물가는 결국 경계수위를 넘겼다. 연간 상승률이 9.5%로
"한자리수"라는 약속을 아슬아슬하게 지키긴 했으나 지난 81년(13.8%)이후
10년래 최고수준인데다 "지수"낮추기에 행정력이 모아져 체감물가상승폭이
그 어느해보다 심각했던 점을 감안하면 한자리수달성의 의미는 크게
퇴색될수 밖에 없다.
올해 물가는 몇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남겼다. 도매물가는 안정을 되찾아
가는데 소비자물가는 겉잡을수 없을 만큼 올랐다는 점과 주로 행정력의
손길이 미치지않는 식료품과 개인서비스요금이 집중적으로 뛰었다는
점,그리고 공공요금인상이 물가상승의 기폭제가 됐다는 점을 꼽을수 있다.
한결같이 공급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여서 우리경제가
인플레이션체질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실감시키고 있다.
올해 도매물가상승률은 3.1%로 작년의 7.4%에 비해 절반이하로 둔화됐으나
소비자물가는 9.4%에서 9.5%로 오히려 폭이 커졌다. 그만큼 산지가격과
소비지가격의 격차가 커졌다는 점이다. 교통난에 따른
수송비증가,부동산값 상승으로 인한 보관비부담 증가,인건비상승에 따른
상하차비용등 물류비용부담이 가중돼 유통비용이 많이들고 있는게
대표적요인이다. 특히 석유류 도매가격이 5.6%나 떨어지고 수입물가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 공산품가격이 평균 5.3%나 오름으로써 이같은
구조적 결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농수산물과 개인서비스요금상승이 물가상승을 주도하고있는 점은
물가행정의 한계를 노출시켰다. 농수산물 수입물량을 예년에 보기드물게
늘렸는데도 명태는 1백41.4%,갈치는 75.4%가 올랐고
상추(87%)배추(55.3%)무(57.5%)수박(50.9%)등은 50%이상 폭등했다. 설렁탕
칼국수등 대중음식료도 평균 20%내외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목욕료는 많이
올린 업소를 쫓아다니며 가격을 내렸는데도 40.4%나 상승했다.
가계부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주는 품목들이 집중적으로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물가행정의 효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요금을 올린 대상과 폭이 그 어느해보다 많고 컸다는 점도 물가부담을
가중시킨 요인이 됐다. 버스 지하철 택시등 교통요금과 각급학교 등록금
의료수가,심지어는 호적초본발급 수수료에 이르기까지 공공요금치고
오르지않은게 없을 정도다.
그동안 공공요금을 물가차원에서 관리,인상요인을 지나치게 누적시켜온
탓이라는게 당국의 설명이지만 결과적으로 정책실패라는 면에서는 달리
할말이 없게 돼있다.
이와함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소비수요가 증가한 것이 물가상승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올해 물가동향이 보여준 이같은 특징들이 내년에도 개선되기
어려운 구조적 병인들이어서 내년 물가는 자칫하면 "두자리수"의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데 있다.
공공요금만 하더라도 전기료와 등록금인상계획이 확정됐고 버스요금과
각종 사용료및 수수료"현실화"방안이 추진되고있다. 인상을 유보시킨
목욕료와 의약품값도 연초엔 인상이 불가피하고 자율화를 빌미로 각종
서비스요금인상이 줄을 이을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내년엔 4차례의 선거라는 난관이 버티고 있다. 뭉칫돈이
굴러다니며 소비를 자극할 것이고 심리적 이완현상까지 가세하게 돼있다.
여기에다 이해집단의 목청이 커지게돼 "긴축"을 내세운 경제정책기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
결국 내년물가는 몇가지의 기발한 아이디어나 단호한 의지만으로는
풀어나가기 어려운 형국이다. 우선은 안정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는
경제논리가 정치논리에 흔들리지말고 차질없이 실행돼야하고 이를 토대로
경제주체들이 고통을 분담하겠다고 나서지 않으면 "두자리"의 험로를
현실로 맞을수 밖에 없을 것같다.
국제수지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운용계획에 잡혀있던
"30억달러적자"가 몇차례의 전망수정을 거치면서 결국 1백억달러에
육박하는 "95억달러적자"로 마감될것 같다. 더구나 내년도에도 쉽사리
개선되지 못할것이라는 우려가 높아 걱정이다.
사상최대규모로 기록될 올해 경상수지적자폭은 내수및 건설경기 과열로
인한 예기치 못한 수입 급증과 국내산업의 대외경쟁력약화에 따른
기대이하의 수출에서 그원인을 찾을수 있다.
경상수지적자의 가장큰 원인으로 지적된 수입급증세에 대해 정부 한은은
하반기이후 수그러들 것이라고 낙관하다 그예측이 빗나가자 그시기를
4.4분기중,11월들어선 틀림없다고 늦췄으나 가속을 받은 건설경기과열은
쉽게 식지 않아 곤혹을 치른 한해였다고 할수있다.
다행히 11월중 수입증가세는 마이너스로 반전됐으나 사실은 지난해11월
걸프사태로 원유값이 급등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수입증가세가 고개를
숙였다고 단언할수 없는 실정이다. 12월들어 27일 현재 수입은 11%나 는데
반해 수출은 4.9%증가에 그쳐 불안감을 떨쳐 버릴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수입급증현상은 과열양상을 보인 내수 건설경기가 주원인이나
시설재도입에 관한 관세감면 유통시장개방등 제도적인 문제도 적지않은
여파를 미쳤다고 한은관계자는 분석하고 있다.
수입증가세는 일본 대만등 경쟁국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올들어
27일현재 우리의 수출증가세는 10.2%,수입증가세는 17.7%에 달한다.
이에비해 일본은 수출 10.8% 수입 4.2%,대만은 수출 13.3% 수입15.8%로
나타났다. 수출증가세는 우리나라 일본 대만과 대동소이하나 수입증가세에
있어선 우리가 월등히 높은 셈이다.
때문에 우리의 경상수지적자 개선을 위해 수입증가세를 진정시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한은은 강조하고 있다.
또 지역별로도 대일무역역조가 사상최대인 81억7천5백80만달러적자로
갈수록 심화되는데다 대미 대EC 모두 적자를 기록해 우리의
3대수출시장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무역수지의 급속한 적자반전과 함께 과소비의 바람을 탄 해외여행붐으로
여행수지가 지난82년(1억2천9백만달러)이후 9년만에 적자(11월말현재
3억6천4백90만달러)로 돌아서 무역외수지에 주역을 담당했다.
경상수지적자가 누적되면서 외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10월말현재
총외채는 3백82억달러,순외채는 1백22억달러를 기록했다. 총외채에서
외환보유고등 대외자산을 뺀 순외채는 89년말의 30억달러에 비해 무려
4배이상 증가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우리경제규모등을 고려해볼때 올해 경상수지적자나
외채등은 아직 큰부담을 주지않는 단계라고 말한다. 그러나 89년이후
3년째 경상수지가 적자를 내고 외채도 다시 늘어나면 국제적 신인도가
떨어지고 각종 부담도 생겨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향후 1 2년간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어쨌든 금년경제는 우울하게 마감된 셈이다. 내년에 대한 기대도 별로
크지않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한가지 희망은 금년의 쓰디쓴 경험이
전화위복의 새로운 밑거름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