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라는 고시조 구절은 멸망한 고려조에
대한 길재의 회포였다.
경제활동에서는 그 누가 당당하게 인걸이라고 불릴만 한가? 일터에서는
부지런하고 지혜롭고 용기있는 일꾼과 집안에서는 번돈을 한푼이라도
아껴서 쓸곳에만 쓰는 야무진 살림꾼이 그렇게 불릴만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는 이런 재래식경제 인걸의 그림자가 사라져 가고있다.
이사실이 70년대의 석유쇼크 이상가는 큰 태풍을 우리경제에 몰고
오고있다. 이 태풍은 밖에서 온것이 아니고 안에서 잉태된것이다.
말하자면 경제적 내란인셈이다. 이것을 가볍게 넘기려다가는 대파국이
닥칠것이다. 우리는 대전환기를 맞고있다.
한국경제는 한동안 상대적빈곤감이라는 불만에찬 캐치프레이즈로 표현되어
왔다. 그러나 실은 바로 그때 절대적포만감이 지배하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일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수 있으니 나도 그렇게 하겠다. 가치있는것은
돈뿐이다. 그러나 돈과 노력은 별개다. 힘들여 일하는것은 어리석다. 더
오랜시간을 일해야 돈을 더 벌수 있는것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은 노는것이
낫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지는 못하겠다. 어영 부영 다른 사람과 섞여서
일하는체 하면 월급이 나오는 곳이 좋다. 누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누가
적당히 시간을 땜질하며 보내고 있는지 모르게 되어 있는 일터가 좋다.
이런 쪽으로 한국인의 의식은 바뀌어 가고 있다. 24일의 대한상의부설
한국경제연구센터의 대규모 표본 조사가 아니더라도 이 점은 이 3~4년동안
점점 뚜렷해져가고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다.
경제활동의 지도자인 기업가와 경영자는 어떤가? 시야가 좁아져도 너무
좁아져 있다. 기업가는 자본과 노동과 기술과 시장을 결합하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닥치는 환경의 변화에 도전하여 승리를 향해 혁신하는 사람이다.
지혜로운 모험가이다. 승려와 시인으로부터도 감탄을 끌어낼수있는 멋쟁이
도박사가 그들이다. 땅장사나 고리대금업이나 이권을 찾아 정치와
붙으려거나 외국회사의 수입에이전트 노릇하느라고 본업을 뒷전에
밀어붙이는 사람들을 기업가라고 부를수 없다.
소비자는 어떤가. 부자는 부자대로 또 가난한 사람마저도 덩달아서
헤프고도 분별없는 소비자가 되어가고 있다. 소비자란 본래 생산자와 따로
떨어져 있는 둘이 아니다. 소비가 헤프면 생산도 게을러질수 밖에 없다.
소비가 저질이 되면 생산도 저질이 될수 밖에 없다. 소비가 해외의존적이
되면 생산도 해외의존적이 될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모한 이러한 내란은 여태까지
산업경제의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불가피한 과도적현상일수도 있다.
미국도 그랬고 일본도 그랬다. 한국인만의 실패는 아니다. 미국도
2차대전후 한국전쟁의 대호경기 기간 공장에서는 작업조장이 되겠다는
후보자 찾기가 극히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보수에비해 책임이 커지는
조장노릇하기가 싫었던것이다. 일본사람들은 60년대 두자리 수숫자
경제성장률을 내면서 월급장쟁들은 예쁜 개를 사서 끌고 골목을
어슬렁거리고(요새 우리나라에도 애완견 마릿수가 부쩍
늘었다)중소기업자들은 둘째 부인을 얻는것이 유유행었다고 한다.
다께우찌치히로시(죽내굉)씨는 근로자가 잔업을 할것인가 애인과 데아이를
할것인가를 두고 잔업을 택하는 경제라야 더욱 성성장수 있다고 웨치고
있었다.
공과대학을 졸업하자 곧 기술집약형 중소기업하나를 만들어 그것을 30년
가까이 운영해오고 있는 어떤 50대 중반의 한국인이 최근 말했다.
우리경제의 살길은 중국제보다도 더 싼 값으로,일본제보다도 더 품질이
나은 물건을 만드는 길 뿐이라고.
여기에 갈림길이 있다. 사람은 배가 불러지고도 배고플때와 똑 같이
살수는 없다. 화장실에 갔다 오면 자연스럽게 생물학적인 여유가 생긴다.
이 여유와 그 뒤의 방도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인생의 실패를 면할수 있느가
하는것이 당면문제다.
열심히 일하고 물건과 시간을 아껴 쓰는것은 그 자체가 가장 확실한
선행이고 인간을 구원할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길이다. 그리고 근로와
검약은 한층더 급이 높은 문화에 도달하는 길이기도 하다. 무조건 돈을
모으고 그것을 낭비하는데서 얻는 단세포 생물의 쾌감차원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한단계 높은 품격과 여유를 갖춘 문화를 창조하는 것으로
경제활동의 목표를 바꿀 필요가 있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경제적 능력을
더 기르고 준비해야 할것이다. 우리경제가 실패하면 세계인구의 8할이
넘는 40억 제3세계인민에게 대하여 극복의 용기를 박탈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을 따라 우리도 해내자라는 희망을 그들에게 안겨줄 책임이 우리에게는
있다.
우리에게는 경제의 당면한 대전환기를 슬기롭게 대응해 나갈 책임이 있다.
고성장과 고소비만 내세우기 보다 시간을 보다 넉넉히 잡고 보다 낮은
성장률일지라도 기술과 근면과 소박성으로써 다져가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