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중고품도 사거나 고쳐쓰지 않는다.
사회전반적으로 확산되어가는 과소비풍조는 중고품을 고쳐쓰던 알뜰한
근검정신마저 잠식해버렸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8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전국대도시
어느곳에서나 쉽게 찾아볼수 있던 가구 도서 전자제품등의
중고품전문상점과 물물교환센터는 찾는사람이 없어 문을 닫거나
덤핑제품판매로 업종을 바꾸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열병처럼 번지는 과소비풍조로 낡고 고장난 중고품을
고쳐쓰는 미덕보다는 고.저소득층을 가리지않고 너도나도 새로운 디자인의
신제품을 찾고있기 때문이다.
6.25직후부터 중고가구시장이 형성돼온 서울아현동의 경우
70년대까지만해도 2백여개소의 가구점이 밀집,성황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단
3개소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동명가구 주인 김모씨는 "장사가 너무 안돼 내년에는 문을 닫을
생각"이라며 "나머지 2개의 가구점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털어놨다.
서울시내 최고의 중고가구밀집지역인 사당동 일대가구점에도 간판만
"중고가구매매센터"로 걸어놓았을뿐 싼가격에 나온 덤핑제품이 주종을
이루고있어 중고가구 찾아보기가 힘들다.
고려가구물물교환에서 점원으로 일하고있는 김용덕씨(26)는 "중고가구를
사러온 사람들도 물건을 둘러보고는 더비싼 덤핑제품을 사간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8년째 가구점을 경영하고있는 관악칠기주인 이정수씨(47)는
"몇푼 받지도 못할텐데 귀찮게 팔것까지 뭐있느냐는 생각으로 쓸만한 것도
그냥 내버리는 가정이 많아 중고품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중고품
품귀현상도 중고품시장을 사양화시키는 요인이 되고있다"고 설명했다.
중고품의 종합전시장으로 유명한 황학동만물시장에도 덤핑제품이 판을
치고있다.
이 일대 상가촌이 형성되기 시작하던 60년대초부터 중고품을 취급해온
화성전자주인 정완섭씨(44)는 "며칠 쓰다 버리기위해 중고품을 급히 찾는
손님이 가끔있을뿐 대부분 덤핑신제품을 찾아 아예 덤핑제품만 취급하게
됐다"며 "거의 새물건과 다름없는 중고품도 남이쓰던 헌물건이라고
외면하는 세태가 한심스럽다"고 개탄했다.
동대문 일대 헌책방도 80년대초반 1백10개를 헤아리던 것이 지금은 절반인
55개로 크게 줄어들었다.
신영서적을 운영하고 있는 전국서적연합회 평화시장지부위원장 이동씨는
"요즘은 학생들마저 헌책을 사보려고 하지 않아 파리를 날리고있다"고
한숨지었다.
학원에서 쓸 중학교3학년 영어교과서를 사러왔다는 이선애양(15.사대부속
중 2년)은 "일반서점에 중 3영어 교과서가 다 떨어져 할 수 없이 이곳에
왔다"며 "이런곳이 있는 줄도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80년대초 알뜰여대생들의 쇼핑가로 인기를 모았던 이대입구의 의류 구두등
중고품상가도 30여개소에서 지금은 단2개소만 남고 웨딩드레스상가에
자리를 넘겨줬다.
"짱구네"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38)는 "요즘은 중고품을
사는사람도,파는 사람도 없어 제품을 구비하기조차 힘들다"며 "더이상
적자운영을 계속할수없어 연말까지 가게를 정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