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력시켰던 지난 주말의 미ABCTV프로는 형식에 있어서 백미이었고 내용에
있어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것이었다. 백미라는것은 정치적 라이벌로
자타가 공인하는 소련의 정상급 두지도자가 미국의 같은 TV회견에 나란히
나와서 미국11개도시 일반시민들의 직접질문에 일일이 즉석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점을 들수있다. 또 역사적 중요성을 지녔다는 내용은
소련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진상이 당사자인 두지도자를 통해 직접확인
됐을뿐 아니라 그것은 결국 세계의 모든사람이 소련에 관해 갖고있는
궁금증에 분명한 해답을 주었다는 점이다.
질문은 두사람의 정치적 관계에서 부터 시작해 종교관,KAL기격추사건의
처리방향,앞으로의 핵무기정책,대쿠바정책,공산주의관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목은 고르비와 옐친이 다같이
74년간에 걸친 소련공산주의의 실험은 실패했다고 주저없이 단언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유토피아의 환상을 추구한 소련의 실패를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물론 공산주의의 쇠퇴가 세계적으로 인지된것은 벌써 몇년전부터다.
베를린장벽붕괴에 이은 서독의 동독흡수통일,동구권일원을 휩쓴
공산정권의 실각과 비공산정권의 출현등 최근 2년간의 동구권변화는 특히
공산주의의 사망을 예고한것이었다. 특히 이에 따라 소련국민들이 가진
공산주의체제에 대한 우월성신앙이 붕괴되었고 경제에서 자본주의보다
소련체제가 무조건 낙후된것임을 확연히 실감시켰다.
그런속에서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작년에는
공산당1당독재를 지양하는 복수정당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두 지도자의
공산주의관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고르바초프의 경우는
페레스트로이카까지도 어디까지나 공산체제를 바탕으로 소련의
사회주의체제의 재생을 추구하는것이었다. 따라서 고르비가 이번
TV회견에서 공산주의의 실패를 공언한것은 쿠데타직후까지도 한때
개혁파에의한 공산당의 재건의사와 공산주의에의 집착을 나타낸 그로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생각을 1백80도 바꾸어 그 사망선고를 전세계에 확인한
셈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고르비의 말은 아직도 공산주의자로서 누린
기득권에 연연한 공산당 관료 군인 군수산업관계자등 특정
소련국민들에게는 충격적인 효과를 지닐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의 포기에 관한한 옐친은 보다 일찍이 분명한 입장을
견지해온만큼 이번의 발언은 조금도 놀랄것이 없다.
옐친은 작년 28회당대회때 공산당을 탈당한데이어
러시아공화국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지난 6월 선거공약으로
공산당포기방침을 선언한바 있기때문이다. 그때 그는 마르크스주의에의한
공산주의체제가 문명사회에의 참여길을 막고 소련국민을 노예상태에
묶어두게했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잇따라 독립을 선언하고있는 공화국들로 구성된 소련
연방대통령이라든지,가장 실력이 강한 러시아공화국의 대통령이 공산주의의
실패를 단언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두 지도자로
하여금 그렇게 말할수 밖에 없도록한 자유.민주에 대한 소련국민의
각성이다.
74년간 국민에대한 비밀경찰의 엄격한 감시와 공산당 군부를 포함한
치안기관들의 합작정치,그리고 그들이 시도한 쿠데타의 실패는 이러한
민주화와 자유에 대한 소련국민의 갈구가 얻어냈던 승리였다.
소련공산주의의 실패를 다른 나라들이 교훈으로 받아들이라는 경험적
충고는 앞서 소련의 새외무장관으로 취임한 판킨이 중미의 유일한
공산동맹국인 쿠바에 대한 원조중단을 발표한것과 함께 중국 북한 월남등
아직도 보수공산주의를 고수하는 공산국가들에 대한 외교정책이 변화될
것임을 시사하는것으로 간주되고있다. 공산주의의 사망은 명백하고 소련에
근본적인 변모가 진행되고있는것만은 이제 부정못할 역사적 사실이
되고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서 공산주의를 위해,또 공산주의로 인해
귀중한 목숨을 빼앗겼는가에 상도할때 74년간의 공산주의역사는 허망과
비극 그자체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고해서,또 공산당이
해체됐다고해서 당장 소련의 민주화나 시장경제화가 실현되는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겨울은 다가오고 있고 인플레와 식량부족은 소련국민생활과 소련자체를
위협하고 있는데도 이에대한 뾰족한 묘책은 나오지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공산주의의 실패를 계기로 우리가 다져야할것은 공산주의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시장경제와 민주.자유화의 창달에 더욱더 노력을 쏟으면서
한편으로는 내포되어있는 미완점을 보완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공산주의 환상에 다시 빠지지 않기위해서는 사회의 내부적 모순을
다듬는데 부단히 노력해야한다. 민주.시장경제체제에 모순이 없는것은
아니다. 그 모순이 지속적으로 시정.보완되려면 끊임없는 반성이
따라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