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지의 미군전사자는 오폭결과...미전사자 11명중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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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쟁 발발후 첫 지상접전이 이루어진 지난주 카프지 전투에서
발생한 미국의 전사자 11명중 7명이 미국측의 오폭에 의한 것임이
드러나자 미국인들은 허탈감속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있은 27일의 브리핑에서 미국현지사령부의 로버트
존스톤소장은 미해병 7명이 카프지 전투중 한 장갑차에서 타고 있다가
다국적군이 적의 장갑차로 오인하고 공중에서 매버릭 미사일을 발사해
이들 전원이 사망했다고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처음부터 "아군포화에 의한 희생"가능성이 큰 것으로 의문점이 제기된
이들 미해병의 죽음에 대해 정작 조사결과가 발표되자 가족이나 일반인들은
허망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군사전문가들은 이같이 오발이나 오폭에
의한 희생자 발생이 조금도 놀랄일이 아니며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주 11명의 미해병 전사자를 낸 카프지전투는 전투가 야간에
근접전으로 이루어졌고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군등 미국으로서는
이라크군과 구별이 쉽지 않은 부대와 합동작전을 벌였다는 점에서
"아군에 대한 살상"이 일어날수 있는 전형적인 조건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존 위컴 전합참의장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날씨가
나쁘다거나 폭격목표지점을 잘못 선정한다든가 하는 오폭의 여러
원인중에 이번 전투가 전형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미군은 차량식별
훈련을 받지만 어둠, 공포, 여러장비를 사용하는 다국적군의 구성등이
적과 아군의 탱크나 장갑차의 구별을 어렵게 한다고 설명했다.
82년에 나온 한 논문에 따르면 월남전에서는 90건의 오폭사고가
있었고 2차세계 대전당시에도 1백73건의 오폭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고로 인한 사상자 수에 관한 집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오폭에 의해 "개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숫자가 다른
전투희생자들의 숫자와 독립해서 집계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오폭사고로 미국은 2차대전 당시 2척의 잠수함을
오폭하여 승무원 전원과 함께 수장시켰는데 한 척은 43년 카리브해에서
오폭에 의해, 다른 한척은 44년 태평양에서 구축함 공격으로 잃은 것으로
기록됐는데 모두 신호를 잘못 읽은 결과라는 것이다.
발생한 미국의 전사자 11명중 7명이 미국측의 오폭에 의한 것임이
드러나자 미국인들은 허탈감속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있은 27일의 브리핑에서 미국현지사령부의 로버트
존스톤소장은 미해병 7명이 카프지 전투중 한 장갑차에서 타고 있다가
다국적군이 적의 장갑차로 오인하고 공중에서 매버릭 미사일을 발사해
이들 전원이 사망했다고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처음부터 "아군포화에 의한 희생"가능성이 큰 것으로 의문점이 제기된
이들 미해병의 죽음에 대해 정작 조사결과가 발표되자 가족이나 일반인들은
허망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군사전문가들은 이같이 오발이나 오폭에
의한 희생자 발생이 조금도 놀랄일이 아니며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주 11명의 미해병 전사자를 낸 카프지전투는 전투가 야간에
근접전으로 이루어졌고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군등 미국으로서는
이라크군과 구별이 쉽지 않은 부대와 합동작전을 벌였다는 점에서
"아군에 대한 살상"이 일어날수 있는 전형적인 조건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존 위컴 전합참의장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날씨가
나쁘다거나 폭격목표지점을 잘못 선정한다든가 하는 오폭의 여러
원인중에 이번 전투가 전형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미군은 차량식별
훈련을 받지만 어둠, 공포, 여러장비를 사용하는 다국적군의 구성등이
적과 아군의 탱크나 장갑차의 구별을 어렵게 한다고 설명했다.
82년에 나온 한 논문에 따르면 월남전에서는 90건의 오폭사고가
있었고 2차세계 대전당시에도 1백73건의 오폭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고로 인한 사상자 수에 관한 집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오폭에 의해 "개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숫자가 다른
전투희생자들의 숫자와 독립해서 집계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오폭사고로 미국은 2차대전 당시 2척의 잠수함을
오폭하여 승무원 전원과 함께 수장시켰는데 한 척은 43년 카리브해에서
오폭에 의해, 다른 한척은 44년 태평양에서 구축함 공격으로 잃은 것으로
기록됐는데 모두 신호를 잘못 읽은 결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