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들에는 자기 스스로도 억제할수 없는 심리작용이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생고집이다.
이래서는 안될텐데 하는 한쪽 마음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에서
이를 거부하는 심리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주 가까운 가족간 친구사이에서도 발생하지만 좀더
큰 범주의 인관관계에서도 왕왕 일어나고 있다.
대소간에 이러한 심리작용의 결말은 대인은 물론 관련 당사자나 주변에
대하여 다행한 결과보다는 원치않던 방향으로 사태를 이끄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보게된다.
특별히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이익공동체이기 때문에 엄격히 말하면
노사관계 역시 쌍방 모두가 협력관계에선 말할나위도 없지만 성과배분을
핵심으로 하는 대립관계의 원만한 유지를 위해서도 이해타산을 도외시하는
행위는 오히려 무모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단체교섭단계에서 이같은 쌍방의 입지가 철두철미하게 반영되는 일이야
말로 우리의 노사관계를 합리화 현대화로 이끄는 첩경이요, 정도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단계에서부터 합리적인 계산보다는 쌍방 모두가
좋게 말해 정서적인 희망사항을 상대방에게 요구 내지 강요함으로써 일을
그르치고 결과적으로 노사 양측은 물론 사회 국민경제 전체에까지 손실을
초래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여기서 짜내야 하는 궁리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것은 바로 이해의
계산이다.
사측도 그렇지만 특히 경제적 입장이 일반적으로 열위에 있다고 하는
노측은 파업의 코스트와 양보의 코스트를 엄밀하게 계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때의 이해계산이 냉철하고 현실적이어야 함은 말할것도 없다.
그렇게 하여 타산이 끝나면 그에따라 행동할수 있는 성숙성을 보여야
한다.
만일 파업을 해서 잃는 코스트가 양보해서 잃는 코스트보다 높을 경우
주저없이 교보재개에 들어가는 것이 현명하다.
........ 중 략 ........
보도에 의하면 현대중공업 노조는 조합의 전직 간부들이 전일의
직무에 관련해 계류되어 있는 형사소송사건과 관련, 검찰의 2심 구형량이
무거운데 항의하기 위하여 집단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위법행위에 얼마만큼의 형량이 1.2심에서
구형되었는지에 관하여 우리는 언급할 입장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문제를 범상하게 보아 넘길수 없는 소이는 사법의
운영, 특히 인권에 대하여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재판에 관하여는
송사의 직접 당사자라도 그에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법외의 행위를 할수
없는것이 근대 이래의 법정신이라고 확실히 믿기때문이다.
구형량 또는 선고형량에 대한 이의제기는 당연히 소송관계법이 정하는
바에 따르는 것이 법치사회에서의 상식이다.
사법영역의 불가침성은 여기서 더 강조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거니와,
동사 노조는 몇걸음을 다시 지나쳐 나갔다.
검찰의 구형과중을 항의하는 수단으로 조퇴와 집단휴가 신청의
방법으로 사업장의 정상조업을 기피한다고 까지 전해졌다.
현대중공업이 근년 여러차례에 걸쳐 격심한 노동쟁의의 온상처럼
인식되어온 사실은 노사 어느쪽에서도 부인할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다른 조선소와 함께 그 노동의 특성이나 환경이 다른
어느 산업보다도 불리한 조건에 있다는 점도 작용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그 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막중한 비중과 관련, 그곳 일부 근로자나 그에 깊은 관심을 갖는 주변적
요소들이 기업 내외적으로 장기적이며 진정한 의미의 이해타산을 그르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아무쪼록 이해당사자는 물론 정부나 사회일반에서도 이러한 불합리가
속히 시정되고, 이나라 어느 구석에서도 다시는 재현되지 않도록 모두
힘을 합쳐야 하리라고 믿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