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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일진 (10월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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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 10월12일(목), 지난날수 285일, 남은날수 80일
    <>월 = 만월로 이행
    <>성 = 새벽별-수성, 화성, 목성 저녁별-금성, 토성
    <>연일성궁 = 천칭좌
    영국 작곡가 랠프 윌리엄스(1872), 오페라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
    <> 오늘의 역사 <>
    * 1492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서인도제도에 도착.
    * 1960 = 흐루시초프, 유엔서 연설도중 신발 벗어 책상을 내리침.
    * 1984 =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에 대한 암살미수사건 발생.
    <> 1일 일성 <>
    "웃음은 두사람 사이를 가깝게 해주는 최단의 지름길이다"
    < 코미디어 빅터 보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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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얀이 극찬한 천상의 목소리, 40년 간 정상의 자리를 지킨 조수미

      1983년 3월 28일. 21세 젊은 여성이 김포국제공항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였다. 이 여성은 고요한 새벽의 공항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 한 줄씩 적어 내려갔다.1. 어떤 고난이 닥쳐도 꿋꿋이 이겨내며 약해지거나 울지 않을 것2. 절대 약하거나 외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늘 도도하고 자신만만할 것3. 어학과 노래에 온통 치중할 것4. 항상 깨끗하고 자신에게 만족한 몸가짐과 환경을 지낼 것5. 말과 사람들을 조심할 것, 말과 행동을 분명히 할 것4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한국 성악계를 넘어 한국 음악인 세계 정복기의 모델이 되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게오르그 솔티를 비롯한 거장들과 협력했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로 대표되는 세계 최고의 무대를 누볐으며 그래미상 최우수 오페라 레코딩을 비롯한 수많은 수상 기록을 남겼다. 이제 그는 교육자이자 멘토,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인플루언서로서 자신만의 당당한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으며,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고 말하는 그는 소프라노 조수미다.조수미는 1962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기억하는 그의 이름은 ‘조수경’이다. 어쩌면, 성악가로서 그의 운명은 그가 태어나기 전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성악가가 꿈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경제적 한계 속에서 꿈을 접어야 했고 그 꿈을 딸에게 투사했다. 딸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태교를 했고, 태어난 딸에게 ‘너는 성악가가 되어야 한다’는 운명의 과제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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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미의 끝없는 예술적 갈증은 한국인에게 축복과도 같다. 드라마 OST로, 뮤지컬 넘버로, 월드컵 응원가로…. 일찍이 세계 오페라 무대를 평정한 조수미는 만족을 몰랐다. 아마도 그 덕분일 것이다. 추억 속 그 시절을 소환하는 노래, 그리고 ‘클래식’이라는 낯설고도 다정한 친구를 얻게 된 것은.온 가족이 TV 앞에 둘러앉기 바쁘던 2000년대 초였다.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명대사를 탄생시킨 2001년 드라마 <명성황후>부터 이듬해 한일 월드컵의 승부차기까지. 전 국민이 숨죽이며 지켜보던 그 시절 명장면에는 언제나 조수미의 노래가 흘렀다. 조수미가 본격적으로 오페라극장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1999년 드라마 <허준>의 OST ‘불인별곡’을 시작으로 2000년 크로스오버 앨범 <온니 러브Only Love>, 2001년 드라마 <명성황후>의 OST ‘나 가거든’ 등 기존 성악가들이 금기시하던 클래식 장르 밖으로 과감히 눈을 놀렸다. 해외 공연이 많아 조수미를 자주 만날 수 없는 국내 팬에겐 그야말로 귀 호강을 제대로 누리던 시기였다. 한국어 노래는 조수미에게도 마음의&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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