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획일적 최저임금 인상, 더는 안 된다

고용 요건·지급 능력 천차만별
일부 업종만이라도 차등화해야

이상열 경제부장
한국의 엉터리 법률이 한두 개가 아니겠지만 최저임금법처럼 허술한 법률이 또 있을까 싶다. 법이 규정한 최저임금 결정 원칙과 기준, 결정체계가 구조적으로 양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법은 최저임금을 근로자의 생계비와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고 업종(사업의 종류)까지 구분해 정할 수 있게 규정(4조1항)한다. 경제성장률, 물가 등 각종 경제지표부터 업종별 생산성·지급 능력, 인상 이후 소득분배 효과와 노동시장 충격까지 복잡다단한 요인을 분석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조항이다. 그랬다면 한국도 최저임금 심의·결정을 영국처럼 독립적인 전문가집단이 하도록 하는 게 옳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법은 황당하게도 이를 노·사·공익위원 9명씩이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 맡겨 놓고 있다. 이해 당사자인 노사까지 참여하는 일종의 전국 단위 임금 협상 구조로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렇다 할 영향 분석이나 계산식도 없이 노사의 첨예한 대립과 소모적 갈등 속에 정부 의중이 담긴 공익위원 안의 졸속 표결로 인상률이 결정되는 일이 매년 되풀이된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될 수 있도록 해 놓고 법에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 조항까지 넣어뒀다.그럼에도 최저임금법은 1988년 시행 이후 30년 가까이 그런대로 굴러갔다. 최저임금 시급이 1990년 690원, 2000년 1865원, 2010년 4110원으로 낮게 관리돼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계의 ‘최저임금 1만원’ 슬로건이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반영되면서 문제가 커졌다. 2017년 6470원이던 최저임금 시급이 2019년 8350원으로 2년 만에 29% 폭등했다. 이후 고용 참사가 발생해 몇 년간 인상률을 낮췄지만 기저효과로 문 정부 이후 최저임금 인상률은 올해까지 52%에 달한다.

한국경제신문은 이달 ‘획일적 최저임금의 역습’ 시리즈 기사를 통해 후유증을 집중 분석했다. 지급 능력과 업무 강도를 무시하고 모든 업종, 모든 사업장의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린 부작용이 누적돼 최저임금법은 이제 ‘부실 법률’ 수준을 넘어 ‘지킬 수 없는 법률’이 됐다. 작년 전체 근로자 중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전년보다 25만 명 늘어난 301만 명(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기준)에 달했다. 전체 근로자 7명 중 한 명꼴로 최저임금법 위반 상태다. 농림어업과 숙박·음식점업, 5인 미만 사업장에선 열 명 중 서너 명이 그렇다. 고용주와 아르바이트생이 ‘짬짜미’해 최저임금 밑으로 시급을 주는 법 위반이 비일비재하다. 농축산업은 미만율이 매우 높은데도 최저임금이 지역과 업종별로 차등화한 일본보다 많게는 두 배 몸값을 주고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21일 첫 전원회의를 열고 심의를 시작했다. 2018년부터 작년까지 7년 연속 부결된 업종별 차등 적용이 올해는 도입될지가 최대 관심사다. 한국은행이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제안하면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구인·구직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한국경제신문의 의뢰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업주는 물론 구직자도 절반 이상이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최저임금 도입 첫해인 1988년만 시행됐다가 사문화한 차등 적용을 농업, 편의점, 돌봄서비스 등 일부 업종만이라도 다시 도입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최저임금법을 다시 ‘지킬 수 있는 법’으로 되돌릴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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