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선 땐 韓안보 손 뗄 수도…겪어본 적 없는 격랑 닥친다"

월요인터뷰

'외교·안보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 윤영관 이사장

美대선 누가 되든 전 세계 변화
바이든, 고물가·이민문제 등 불리
트럼프, 주한미군 철수카드 쓸 수도
韓, 핵무장 등 모든 옵션 검토를

한반도 외교정책 출발점은 '북한'
北, 선제공격 언급 '적대국' 전환
한·미 동맹관계 최우선 고려하되
'통일 지향 관계' 인식 버리면 안돼

'한·미 훈련 중단' 명문화하잔 文
국가 안보 놓고 北과 거래한 꼴
진보진영의 안이한 인식 보여줘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25일 서울 신문로2가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질서의 축’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며 “미국 대선 결과, 중국 양안, 북한의 긴급사태 등에 관해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대철 기자
“세계정세가 격랑으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변화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2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은 물론이고 중국의 대만 침공, 북한의 긴급사태 등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윤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지만 진보진영 인사로 분류되지는 않는 편이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진보진영의 세계 안보 인식이 지나치게 안이한 점을 우려하며 거듭 경고했다. 14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아산플래넘 2024’를 여는 등 외교·안보 싱크탱크로서 아산정책연구원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는 윤 이사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을 포함해 “세계 질서의 축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요.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가 될지 알 수 없어 양쪽 다 준비해야 합니다. 낙태 문제 등이 바이든 대통령에 그렇게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높은 물가도 바이든에게 불리합니다. 이민 문제 또한 핵심 이슈인데 트럼프가 우위를 점하고 있죠.”▷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데요.

“트럼프 재임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시도하려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당시 국방장관이 ‘트럼프 2기 우선과제로 삼자’고 설득해서 막았다고 들었어요. 당시 준비가 부족한 채 집권해서 이런 일을 강행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2기가 되면 달라질 거예요. 보다 강하게 자기주장을 할 겁니다.”

▷트럼프의 공화당 내 위상도 달라졌지요.“공화당 내 ‘어른’이라고 불리던 온건파들의 영향력이 사라졌어요. 트럼프 2기에선 견제할 사람이 없어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피로감도 크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우크라이나 지원을 끊을 것입니다.”

▷힘의 균형이 달라지나요.

“그렇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끊고 러시아가 승리하면 ‘권위주의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러시아·이란·북한 진영의 영향력이 커질 거예요. 북한 위협이 높아지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안보에서 손을 뗀다면 한국은 핵무장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검토해야 합니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도 한층 커지겠죠.”▷북한은 어떤 전략을 취할까요.

“최근 북한이 안보 위협에 관해 사용하는 표현이 유례없이 강해졌어요. 조건을 붙이긴 했으나 ‘한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 시작했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할 경우 북한은 한국과 대화할 필요 없이 바로 미국과 고위 관계자끼리 소통하면 된다고 여길 수 있어요. 싱가포르 회담(2018년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중단되는 것을 이미 봤잖아요.”

▷미·중 갈등으로 한국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일이 늘었는데요.

“미국은 오랫동안 중국을 포용하는 정책을 썼어요.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부터 포용정책을 폐기하고, 대결정책으로 나갔습니다.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고 중국은 경제 파트너죠. 둘 다 중요한 대국이지만 우리가 첫 번째 고려해야 할 부분은 북한입니다.”

▷어떻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까요.

“과거처럼 남북이 상호 교류 협력하는 데탕트 시대는 갔어요. 북한이 우리를 ‘적대국가’라며 위협을 고조하는 상황은 안보 문제와 직결됩니다. 한·미 동맹관계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뒤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할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의 외교전략은 어떻게 짜야 할까요.

“누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이 근시안적 국익에만 매몰된 결정을 하지 않도록 계속 강조해야 합니다. 네트워킹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북한이 급변하는 상황을 가정하면 어떤 대응이 필요한가요.

“진보 정부는 이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았어요. 만약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인도주의적 위기와 핵 문제, 내부질서 유지, 중국의 조치 등을 고려해서 우리가 ‘즉각’ 대응할 시나리오를 짜놔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이죠. ‘같은 민족으로서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는 인식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최근 회고록에서 ‘북한의 핵·장거리미사일 실험 유예에 대한 조치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명문화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유엔과 국제사회가 금지한 핵·장거리미사일 폐기도 아니고 기껏 ‘실험 유예’라는 북한의 불법행위 중단과 한국의 안보상 정당한 행위의 중단을 맞바꾸는 것이 적합한지 모르겠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밀월관계를 강화하고 있는데요.

“시 주석의 최근 유럽연합(EU) 방문 과정을 보면 유럽 지도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는 인상이 듭니다. EU에선 시 주석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우려를 나타내고 물자 지원에 관한 걱정을 덜어주길 바랐을 텐데 오히려 (푸틴과 가까운) 헝가리와 세르비아의 권위주의 지도자들을 만났죠. 시 주석은 국내 정치에서도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시 주석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 윤영관 이사장은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73)은 서울대 사회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출신이다. 2003~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다. 작년 3월부터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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