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얽힌 한옥, 불면증 걸린 화가… 올 봄 아트선재센터의 '선택'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서
이요나·우정수 각각 개인전
한옥 공간. /아트선재센터 제공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젊은 국내 작가들의 전시는 항상 국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다. 양혜규·이불·서도호·최정화·정연두 등 많은 국가대표 작가들이 신진 작가 시절 이곳에서 전시를 열었기 때문이다.

지금 아트선재센터에서 각각 전시를 열고 있는 1986년생 작가 두 명도 마찬가지다. 이요나 작가(38)는 스테인리스 스틸 배관과 일상적인 사물들을 활용한 조형 작품을 주로 만드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트선재센터의 한옥 공간부터 옥상 공간까지 전시실 밖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카페 혹은 작은 전시실로 활용되는 미술관의 한옥 내부에서부터 전시는 시작된다. 자그마한 내부 공간에는 침대와 욕조, 세면대와 테이블 등 일상적인 집기들이 빼곡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파이프들이 어지럽게 가로지른다. 옛날 놀이터에 있던 놀이기구 ‘정글짐’이 연상되는 광경이다. 이는 한국의 엄청나게 높은 인구밀도와 숨가쁜 일상을 상징한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파이프가 계속 연결돼 있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옥상 설치 사진. /아트선재센터 제공
한옥 공간에서 나와 파이프를 따라 미술관 내부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또다른 설치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옥상 한 구석 덩그러니 놓은 파이프와 신호등, 버스 정류장의 벤치 등이 그 작품이다. 뉴질랜드의 인구밀도와 느긋함을 형상화했다. 이 작가는 “어린 시절 한국에 살다 뉴질랜드로 이주했는데, ‘극과 극’의 인구 밀도 차이에 놀랐다”고 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인구밀도는 1제곱킬로미터당 511명으로 세계 최상위권(16위)이었고, 뉴질랜드는 1제곱킬로미터당 20명으로 최하위권(168위)이었다.옥상 작품 너머로는 아트선재센터 주변의 서울 풍경이 내려다 보인다. 이렇게 서울과 뉴질랜드라는 두 공간의 인구밀도와 일상의 속도를 대비시키며 이 작가는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는 누구에게나 다르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지난 2~3월 댄 리 작가의 개인전 때 흙을 사용한 설치작품을 미술관에 들여놨던 것처럼, 최근 미술관은 이렇게 미술관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들을 잇달아 전시하고 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전시감독은 “관객들이 한옥 안에 들어가는 건 물론 작품을 만지거나 앉아 볼 수도 있다”며 “관객들이 어떻게 작품을 다루고 감상할지 궁금하다”고 했다.

1층 전시 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우정수 작가(38)의 개인전 ‘머리맡에 세 악마’도 주목할 만한 전시다. 우 작가는 유럽 중세의 출판물과 성경, 신화, 미술사, 만화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섞어 솜씨 좋게 그려내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작가다.
우 작가의 대작. /아트선재센터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본인의 불면증과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모티브를 얻은 자전적인 성격의 대작을 특히 주목할 만하다. 빵모자를 쓴 화가 캐릭터가 성공하기 위해 악마와 거래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이야기를 펼치는 과정과 곳곳에 숨은 여러 상징들을 엮어내는 실력이 탁월하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바라볼수록 새로운 이미지와 뜻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우 작가는 “이번에는 다른 것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작품’을 마음껏 해 봤다”고 말했다.우 작가는 지난해 프리즈 서울이 선정한 제1회 ‘아티스트 어워드’를 수상한 우한나 작가의 남편이기도 하다. 작품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맥주를 든 캐릭터는 아내인 우한나 작가를 상징하는 캐릭터라고 한다.
우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성수영 기자
이요나 작가의 전시는 8월 30일까지, 우정수 작가 전시는 6월 30일까지 열린다. 6월 2일까지는 두 전시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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