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늘리다 탈났다…'돈먹는 지방공기관' 통폐합 속출

전국 출자·출연기관 10년새 300여곳 급증

지자체, 복지증진·지역발전 명목
설립 장벽 낮은 탓에 '우후죽순'
기능 불명확·중복에 혈세만 낭비

방만경영 드러나 잇단 구조조정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폐원 수순
충남선 연구원 등 12곳 '수술' 운명
“솔직히 이런저런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세워진 기관이 너무 많습니다.”(광역 지방자치단체 지방공기업 A씨)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지방 공공기관이 재정난으로 속속 통폐합 절차를 밟고 있다. 특히 지자체가 손쉽게 설립할 수 있는 산하 출자·출연기관이 ‘세금 먹는 하마’라는 지적과 함께 구조조정에 들어간 모양새다. 지자체 출자·출연기관 설립 장벽을 높이고 관리 감독 기준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 공공기관, 매년 30곳 불어난 셈

21일 전국 지자체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내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에 해당하는 출자·출연기관이 잇따라 통폐합하고 있다. 공공돌봄 담당 출연기관인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 서울시의회의 관련 조례 폐지에 따라 폐원 수순을 밟게 됐다. 지난 6년 동안 세금 약 830억원이 들어갔지만, 설립 목적대로 운영되지 않는 등 방만 경영이 계속됐다는 이유다.

전주시 산하 전주문화재단과 한국전통문화전당 2곳도 통폐합을 추진한다. 부산시에서는 복지 분야 정책 연구를 위해 출연한 기관인 부산복지개발원이 시 공공기관 효율화 방안에 따라 지난해 부산사회서비스원으로 기능을 전환했다. 충청남도에서는 충남연구원, 사회서비스원 등 12곳이 통폐합을 앞두고 있다.지자체 출자기관은 지자체가 출자한 만큼의 지분을 보유하는 ‘주식회사형’ 기관이다. 출연기관은 지자체가 개별 법령 및 조례에 따라 설립한 뒤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대는 ‘재단법인형’ 기관이다. 공기업에 비해 설립이 쉽다 보니 지난 10년 동안 경쟁적으로 생겨났지만 세수 감소와 비효율적 운영으로 인해 상당수가 통폐합 운명을 맞고 있다.

설립 장벽 높이고 재정관리 시급

이날 행정안전부 지방공공기관 통합공시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 출자·출연기관은 2024년 현재 843곳에 달한다. 2014년 540곳에 비해 무려 300여 곳 늘었다. 설립 기준이 까다롭지 않아 통폐합으로 줄어드는 기관 못지않게 새 기관도 줄줄이 생기고 있다. 지난해에는 25곳이 통폐합되는 동안 새로 기관이 생겨나면서 순감소가 13곳에 머물렀다. 행안부가 지난해 통폐합을 유도하는 지방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반짝 효과에 그치고 있다.

새로 출범한 출자·출연기관 중에는 파주장단콩웰빙마루(출자기관), 의정부리듬시티(출자기관)처럼 기능이 불명확하거나 중앙 공공기관과 역할이 중복되는 곳이 적지 않다. 무분별하게 늘어난 기관은 세수 감소에 시달리는 지방 재정만 축낸다는 비판을 받는다. 천안시가 매년 289억원을 투입하는 8개 출자·출연기관 중 2곳은 경영평가 최하위 등급을 받아 천안시의회로부터 “시정과 시민에게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고 개선 의지도 없는 기관”이라고 비판받기도 했다.전문가들은 기관을 무분별하게 늘리고 방만 경영을 지속해도 이를 걸러내지 못하는 설립·감독 기준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행안부가 새로 설립하는 출자·출연기관의 직원 수를 광역시·도는 28명, 시·군·구는 20명 이상 등으로 기준을 강화했지만, 지자체의 ‘설립 본능’을 제어하기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인섭 조선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금은 출연·출자기관별 사후 평가를 지자체가 용역을 준 업체에서 진행하는 방식이어서 지자체 입김이 들어갈 여지가 있다”며 “행안부가 일관된 기준 아래 지자체별 평가 내용을 재확인하는 등 사후 관리감독 과정을 촘촘하게 마련해야 객관성을 담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유림 기자 our@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