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미스터리 중국인 가족…"F-35기지 스파이였나"

F-35 도입 확정 안된 2018년 비행장 옆 호텔 구입

중국, 2017년 입법으로 모든 국민이 잠재적 스파이
스위스의 한 마을(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사진 = 게티이미지
스위스의 121년된 호텔 뢰슬리(Rössli), 지난해 어느날 스위스 연방경찰이 급습해 소유주 중국인 왕진 씨 부부와 아들 다웨이를 연행해갔다. 이 호텔은 스위스 공군이 F-35 전투기를 운용하는 비행장 활주로와 91m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왕 씨는 스위스가 미국과 전투기 도입 논의를 시작한 2018년 이 호텔을 매입해 운영하기 시작했고, 스위스는 2022년 F-35 도입을 확정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중국이 이 호텔을 정보기관의 감시 초소로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왕 씨 일가족과 중국 정부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알프스의 미스터리: 중국인 가족, 스위스 여관,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무기'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 사건을 집중 취재해 보도했다. 결론부터 살펴보면 중국은 독재 권력을 이용해 전 국민을 스파이로 동원할 수 있는 초한전(超限戰·unrestricted warfare) 전략을 사용하기에 미국과 영국 등이 스위스 당국에 요청한 이같은 조치는 정당하다는 게 이 신문의 주장이다. 2017년 제정된 중국 국가정보법 7조에 따르면 “어떤 조직과 개인도 모두 관련법에 따라 국가의 정보공작 활동을 지지하고, 돕고, 협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게 근거다. 같은 법 14조는 “정보기관 요원들은 유관기관과 조직, 공민에게 정보수집과 관련해 필요한 협조와 지지를 요청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보도에 따르면 왕 씨가 스파이 활동을 했는지, 군사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스위스의 호텔을 매입했는지 등은 확인할 수 없다. F-35는 2028년 배치될 예정이다. 다만 주변인들은 왕 씨의 아내는 중국어 밖에 할 줄 모른다는 점, 스위스 영주권 없이 관광비자로 왔다 갔다 한다는 것, 아들은 호텔 경영학과를 나왔다고 하고선 커피 만드는 기본도 모르는 점 등을 의심스레 바라봤다. 기존에 호텔 직원들에게 중국 요리를 만들라는 등의 요구를 한 끝에 그만두게 하고, 체류 자격도 없는 중국인들을 고용한 점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라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인도의 에어쇼에 참가한 F-35라이트닝 전투기 /사진=게티이미지
스위스 운터바흐의 이 작은 마을에 1903년 문을 연 객실 8개짜리 뢰슬리 호텔을 경영하던 카스파 콜러 씨는 나이가 들어 은퇴를 결심했다. 호텔을 매물로 내놓고 전통을 이어 경영을 맡을 새 주인을 기다렸다. 그러나 매수에 나섰던 마을 양계장 주인은 대출을 받는 데 실패하는 등 주인을 찾지 못하던 중 F-35 도입 논의가 본격화된 2018년 중국인들이 나타났다.콜러씨는 호텔 매매 계약 다음 날 이들에게 스위스 요리법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이들은 손님 테이블에 앉아 서빙을 기다렸다. 실망한 콜러씨는 열쇠를 건넸고 식당도 곧 문을 닫았다. 마을 사람들은 WSJ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왕 씨 가족이 성수기인 크리스마스에 베이징으로 돌아가곤 했던 일과, 왕 씨가 자신을 외교관 자녀라고 말한 점 등을 기억해냈다. 스위스 정부 등에 확인한 결과 왕 씨가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복무한 외교관 4명 중 2명은 무관이었다. 중립국인 스위스는 냉전 시대 북한과 소련 중국 등의 스파이 활동의 중심지였다.

연행된 왕 씨는 결국 스위스 호텔 산업법을 경미하게 위반한 혐의로 5400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다만 호텔은 180만달러에 매물로 나왔다. 지난 1월 이 호텔은 스위스군이 매입했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중국인 소유 호텔을 급습했던 스위스 연방정보국은 자세한 논평을 거부하고 대신 연례 보고서인 '스위스 안보'의 한 부분을 WSJ에 보냈다. 보고서는 중국 정보원들은 주로 과학자, 언론인 또는 사업가로 위장 활동하며, 러시아보다 스위스에 민간인으로 파견된 스파이를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사건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고 "관련 당사자들은 근거 없이 중국을 비방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며 "미국은 중국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억압하기 위해 ‘중국 간첩 활동’을 자주 과장해 왔다"고 비난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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