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벤자민 버튼' 조광화 작가…"삶이 각박할수록 울림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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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벤자민 버튼'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주름 가득한 노인으로 태어난 그는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죽는다.
조광화 작가·이나오 작곡가 인터뷰
국내 창작 뮤지컬 '벤자민 버튼'이 초연 무대에 올랐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벤자민 버튼'의 일대기 그린다. 서로의 시간이 반대로 흐르는 역설적인 운명에도 평생 서로를 사랑하는 벤자민과 그의 애인 '블루'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엇갈린 시간 속 연인의 사랑을 무대 위로 올린 조광화 작가와 이나오 작곡가를 만났다.▶▶▶(관련 인물) 스콧 피츠제럴드= 하루키가 사랑하는 20세기 미국 대표 작가이 작품의 극본을 쓴 조광화 작가는 극작가이면서 연출가다. 1992년 ‘장마'로 희곡 작가로 등단한 이후 ‘천사의 발톱‘, ’내 마음의 풍금‘등의 작품을 연출하며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활동해왔다.
그가 처음 극작가를 꿈꾼 이유는 "재밌는 게 없어서"였다. 학창 시절 흥밋거리를 찾지 못했던 조광화 작가는 교과서에 실린 한 희곡을 읽고 매료됐다고 한다. 그는 "희곡을 본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고 빨갛게 달궈진 꼬챙이가 내 몸을 관통하듯 짜릿했다"고 회고했다. 조광화가 '벤자민 버튼'으로 뮤지컬을 만들게 된 배경에는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만화가게가 있었다. 어릴 적 숱하게 접한 만화책 덕분에 그는 판타지와 공상과학 장르가 문학적 기반이 됐다.
그가 이나오 작곡가와 만난 건 뮤지컬 '벤자민 버튼'이 아직 형태를 갖추기 전인 2013년이었다. 이나오 작곡가는 런던 왕립음악원 피아노 학사·석사 졸업 후 뮤지컬 음악으로 전향한 뮤지컬 작곡가다. 그는 "가사를 쓰기 위해서 자연스레 장면을 그려 거기에 가사를 붙이는 작업을 했다"며 "이야기를 상상하고 이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며 뮤지컬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10년 전인 당시 이나오는 단막극 'I Hate Christmas'(나는 크리스마스가 싫어)를 공연 중이었다. 이 뮤지컬을 보고 이나오 작곡가의 음악을 들은 조 작가는 그 자리에서 이 작곡가에게 같이 작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나오 작곡가의 음악을 들으면 슬픈 장면도 낙천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며 "그런 점이 '벤자민 버튼'이라는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2021년 CJ문화재단의 창작 뮤지컬 공모 사업 '스테이지업'의 지원작으로 뽑히며 본격적인 기획개발에 도입했다. 그해 처음으로 기성 작가들의 작품도 공모 대상에 포함되면서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같은 해 11월 CJ아지트 대학로에 '스테이지업' 선정작 쇼케이스 공연을 통해 뮤지컬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와 만나 지난 11일 초연 무대에 올랐다.
벤자민 버튼 조광화 작가는 제작과정에서 "욕심을 버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작품 속에 최대한 많은 이야기와 요소를 집어넣고, 최대한 큰 극장에서 많은 관객을 만나려는 욕심을 부리다 보니 준비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인생에 회의를 느끼면서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작가로서 전성기가 지난 건가', '이제는 끝인가'는 생각에 빠져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작품의 성공, 작가로서 업적이 될만한 대단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전전긍긍했죠"그는 벤자민의 일대기를 관망하듯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과연 찬란한 순간만이 행복한 것일까'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됐어요. 별 것 아닌 것 같은 모든 순간 한순간이 모두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으니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됐어요"
오랜 준비 끝에 무대에 올린 두 사람에게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물었다. 이나오 작곡가는 벤자민 버튼과 블루가 30대에 접어든 장면에서 노래하는 '사랑한다면'이라는 넘버를 꼽았다.
"인간이 가장 순수한 시기에 사랑할 때 나올 수 있는 음악이에요. 아이러니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복잡하고 오묘한 정서가 담겨있어요. 저도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 곡을 썼던 30대 초반에 했던 사랑이 떠올라요."
조광화 작가는 치매에 걸린 블루를 등장인물들이 다같이 보살피는 장면이라고 대답했다.
"삶이 정신없고 각박할수록 울림이 있는 장면이에요. 소중한 사람에게 애정을 갖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장면이니까요.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도 한발 물러서서 자신의 인생과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
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6월30일까지 공연한다. ▶▶▶(관련 기사) 벤자민 버튼, 버지니아 울프, 천개의 파랑까지… 국내 창작 뮤지컬 만발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