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도박장 '홀덤펍' 올스톱…시드권 불법 거래 '철퇴'

"거래되는 시드권 모두 불법"
칼 빼든 범정부 홀덤TF
홀덤펍 운영 '전면 재검토' 이뤄져야
정부가 홀덤펍에서 우승 상품으로 지급하던 상위대회 참가권인 ‘시드권’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시드권 현금 거래가 만연하고, 수억원대 초대형 대회까지 열리는 등 불법 논란이 커지자 ‘홀덤 생태계’ 전반에 대해 칼을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강남에 한 홀덤펍에서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모습/사진=정희원 기자
시드권 불법화로 전국 수천여개의 홀덤펍은 당장 영업 방식을 바꿔야 할 전망이다. 매주 상금만 수억원 규모의 대회를 열던 주요 홀덤 단체들도 열기로 했던 대회를 당장 제고하는 등 작지 않은 파장이 일 전망이다. ▶본지 1월 14일 A27면 참조

'시드권' 현금 교환시 무조건 처벌

문화체육관광부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경찰청 등이 포함된 ‘범정부 홀덤 TF’는 10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카지노업 유사행위 금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홀덤 게임을 통해 얻은 칩과 시드권 등을 현금으로 교환하면 카지노 허가를 받지 않고, 영업하는 ‘유사 카지노’라고 규정하고 개정된 관광진흥법에 따라 관련자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게 골자다.

‘텍사스 홀덤’으로 알려진 홀덤은 포커 게임을 변형한 카드(플레잉 카드) 게임이다. 4~5년 전 국내에 유입돼 널리 퍼졌다. 전국엔 홀덤 게임을 즐기며 간단히 주류를 마시는 2000여개 홀덤펍이 있다. 그동안 홀덤펍에선 인당 3~5만원을 내고 참가하는 자체 대회 입상 시 장당 액면가 10만원의 시드권 10장 내외로 지급해왔다. 이 시드권을 얻으면 상금 1000만원 대 중간 규모의 대회에 참여할 수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시드권을 얻으면 상금이 ‘억대’인 메이저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었졌다. 그동안 홀덤 업계는 “시드권 자체는 현금 가치가 없는 대회 참가권일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실상은 카카오톡 채팅방, 중고 거래 플랫폼 등 곳곳에서 현금 거래가 꾸준히 이뤄졌고, 대회장 현장에서 현금 교환도 가능했다. 한국경제신문 취재 결과 지난 1월 한 시드권 거래 전문 업자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거래된 시드권의 총액은 1억 8000만원에 달했다. 가이드라인이 확정되면서 이런 행위는 모두 불법으로 홀덤펍 업주, 참가자 모두 처벌 대상이 될 전망이다.시드권이 거래되며 홀덤펍이 ‘도심 속 도박장’이 되었다는 비판이 커지자 정부가 철퇴를 내렸다는 분석이다.
지난 1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운영되던 '불법 시드권 거래방'의 모습/ 사진=카카오톡 채팅방 캡쳐
홀덤펍 불법행위를 집중단속하고 있는 일선 경찰들도 이번 가이드라인 발행에 반색을 표하고 있다. 불법 홀덤펍 현장 단속업무를 맡고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 발행으로 모호했던 시드권의 법적 지위가 명확해지면서 현장 단속이 한결 편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달 4월부터 '불법행위 집중점검 기간'을 가지며 홀덤펍의 불법행위에 대한 본격적인 단속에 나섰다. 지난 2월 서울강남경찰서 논현1파출소가 상금 2000만원 대 규모 대회를 개최하는 한 강남 홀덤펍의 시드권 불법 현금 거래 현장을 급습 한 이후 심각성을 파악한 경찰이 단속의 고삐를 조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14일 의정부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게임 칩을 현금으로 바꿔주는 방식으로 운영한 불법 ‘홀덤펍’ 현장을 단속하고 있다. /사진=경기북부경찰청 제공

시간제 영업으로 전환...풍선효과 불보듯

범정부 TF는 금전 거래가 발생하지 않는 홀덤 게임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불법으로 규정했다. ‘재산상의 이익이나 손실을 주는 행위에 해당하지않는 경우’라면 카지노업 유사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행된 수단이 나중에라도 현금으로 교환된다면 불법으로 보고 처벌하기로 했다. 시드권을 통한 홀덤 생태계가 철퇴를 맞게 된 것으로 소규모 홀덤펍은 물론, 대형 대회 운영사들도 새롭게 영업방식을 짜야 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개인한테 귀속 되지 않은 어떠한 형태의 시드권은 현금 거래 소지가 있어 불법이기 때문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총상금 24억원에 달하는 대회를 한 대형 호텔에서 연 국내 1위 홀덤 대회사 APL은 최근 경찰 단속이 강화되면서 아예 시드권 발행을 중지했다. 해당 대회의 상당수 참가자들이 현금으로 시드권을 구매한 후 참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렇게 거래된 시드권의 총량은 34억 가량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홀덤펍은 보드게임방, 당구장처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TF 관계자는 "개인에게 귀속되어 거래가 불가능한 형태의 참가권이나 포인트를 이용한 홀덤 게임은 합법"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시드권은 지류 형태로 발행되거나 디지털로 거래가 가능한 형태로 발급돼 각종 홀덤 대회에서 시드권을 획득한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았다. 각 시드권의 액면 가치(10만원)에 상응하는 가격으로 거래가 활발히 이뤄진 배경이다.

일각에선 홀덤펍 이용자가 다른 불법 도박판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미 일부 홀덤펍 이용자는 보드게임방 등을 빌려 현금을 걸고 ‘자체 하우스 게임’을 하고 있다.홀덤업계에서는 이번 가이드라인 공표가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뿌리칠 수 있는 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강우성 한국홀덤협회장은 "가이드라인에 따른 대회 개최·운영을 통해 불법으로 낙인찍인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2028년도 LA올림픽의 시범종목으로까지 거론되는 홀덤을 마인드스포츠로 정립시키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더펌의 정철승 변호사는 “해외에선 마인드 스포츠로 인정받는 홀덤이 국내에선 가이드라인을 계기로 합법화, 정상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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